풍산군부인(豊山郡夫人) 재사(齋舍)

안동시 풍산읍 수리 오례골

7세  전농정(典農正) 휘(諱) 득우(得雨)공의 배위(配位) 풍산군부인(豊山郡夫人) 풍산류씨(豊山柳氏) 재사(齋舍)이다.

영모재(永慕齋)

안동시 송현동 사야곡

7세 참봉(叅奉) 언적(彦迪)공의 재사(齋舍)이다.

봉례공(奉禮公) 재실(齋室)

안동시 풍산읍 상리 시묘동

8세 합문봉례(闔門奉禮) 휘(諱) 혁(革)공 재실(齋室)이다.

직산재(稷山齋)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86호
예천군 호명면 직산

9세 비안공(比安公) 휘(諱) 삼근(三近),10세 정헌공(定獻公) 휘(諱) 계행(係行)을 모시는 재사(齋舍)이다.

16세기 초⋅중엽에 창건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수와 이건의 과정이 편액된 현판의 내용을 통해 자세하게 파악되며, 강당은 위치에 따른 위계의 표현하기 위하여 원기둥과 네모기둥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고 기둥 위치에 따라 장식적인 익공과 낮은 위계의 민도리 구조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어서 건축계획적인 의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평면형식, 보머리 가공 형식, 외기도리의 충량과 고미반자를 위한 직각보의 설치 등에서 조선초 형식이 계승되고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건축적 가치가 있는 점 등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역동재사(嶧洞齋舍)

안동시의 문화유산 제7호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1734년경에 건립되었다.

개화기 이후 안동김씨문중에서 사설 신교육기관인 역동 의숙으로 사용한 건물로 강당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역동재를 짓기 전에는 청원루에서 신교육을 받았다.

역골의 산자락 끝에 배산하여 남동향으로 앉아 있는 역동재는 산자락을 방형으로 정지하여 그 중앙에 一자형 건물을 놓고 주위에는 기와지붕 판축 담장을 둘렀으며 정면 담장 가운데에 출입문인 사주문이 나있다.

지금의 건물은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보기 어려운 후대의 큰 특징 없는 구조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소산 마을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헌공(定獻公) 불천위(不遷位) 사당(祠堂)

묵계 종택내에 있다.
청덕사(淸德祠)라 한다. 

보백당과 용계당 사이에는 사당이 모셔져 있으며, 대문에는 尊祖(존조) 重宗(중종)이라 쓴 글이 붙여져 있다.

1909년 보백당 선생의 부조전(不祧典)의 칙령(勅令)을 받고, 지역 유림과 자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불천위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집으로, 앞쪽에는 삼문이 있고 낮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장령공(掌令公) 재실(齋室)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판관공(判官公) 휘(諱) 계권(係權)공의 5남 장령공(掌令公) 휘(諱) 영수(永銖)공의 재실(齋室)이다.

별묘사당(別廟祠堂)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양소당(養素堂)에 있다.

1820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정산(井山) 병관(炳觀)공이 세웠고 1880년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장한(章漢)공이 수리하였다고 한다.

*병관--승의랑공(기보.극)파
*장한--병관공의 증손자

달수재(達壽齋)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정헌공(定獻公)파-참봉공(叅奉公)파 파조(派祖) 15세 극인(克仁)공의 재사(齋舍)이다.

구전공(苟全公) 불천위(不遷位) 사당(祠堂)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

정헌공(定獻公)파-생원공(극례)파 15세 구전(苟全) 중청(中淸)공의 불천위(不遷位) 사당(祠堂)이다.

부훤당공(負喧堂公) 묘우(廟宇)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계공랑공파-참봉공(시좌)파 16세 부훤당(負暄堂) 해(楷)공을 모신 묘우다.

백야사(白冶祠)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백야장군의 생가터 기념관 뒤쪽에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추양사(秋陽祠)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

애국지사 지산(志山) 휘(諱) 복항(福漢)공을 모신 사당이다. 1975년 홍성군에서 건립했다.

마곡서당(磨谷書堂)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마곡서당은 선조 32년(1602년)에 사림들의 공론으로 눌재(訥齋) 휘(諱) 생명(生溟)공과 변계손을 비롯한 일곱 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서당이다.

19세기 초 마곡서원이 됐다가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 

1996년 국비지원과 문중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구미당(九未堂)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 여포마을

구전(句全) 김중청(金中淸)선생이 56세때인 1621년(광해군13) 구미당을 건립 후학들의 강학지소로 하였던 건물로서, 비지정 문화재이다.

구미(九未)란 자미차(慈未且), 배미전(配未全), 교미박(交未博), 서미독(書未讀), 학미취(學未就), 도미수(道未修), 거미정(居未定), 사미신(仕未信), 방미지(謗未止)이다.

구미당(九未堂)의 당호가 된 구미(九未)의 뜻은 아홉가지를 못했다는 것으로

①자미구(慈未具) : 자애로움을 갖추지 못하고
②배미전(配未全) : 배우자도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으며 ③교미박(交未博) : 교우의 사귐도 넓지 못하고
④서미독(書未讀) : 책도 많이 읽지 못했으며
⑤학미취(學未就) : 학문도 성취하지 못하고
⑥도미수(道未修) : 도(道)도 수양하지 못했으며
⑦거미정(居未定) : 거처도 안정되지 못하고
⑧사미신(使未信) : 벼슬도 신임 받지 못했으며
⑨방미지(謗未止) : 비난도 그치지 않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강린당(講麟堂)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청음(淸陰) 휘(諱) 상헌(尙憲)공을 모신 서간사(西磵祠)가 순조때 사액(賜額)되었으나 고종7년에 훼손되었다.

후학들이 서미리에 강린당(講麟堂)을 짓고 공을 추모하였다.

1820년 안동부사 휘(諱) 학순(學淳)공이 쓴 편액과 영흥부원군 조근(祖根)공이 쓴 시가 게판되었다.

간와당(簡窩堂)

음성 향토문화유적 20호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중공(학)파 18세 간와(簡窩) 휘(諱) 혜(憓)공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고자 지은 강당이다.

원래는 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동학혁명과 을미의병 당시에 일본군에 의해 불에타 1939년 형재 위치에 복원되었고 1997년에 보수디엇다.

돈목당(敦睦堂)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장사랑공(환)파 17세 돈수(遯臾) 휘(諱) 인보(仁輔)공의 강학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