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거(木石居) 유허비(遺墟碑)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청음선생이 낙향하여 이곳 서미리에 초가집을 짓고 고사리를 캐어 먹으면서 사셨다.

청음선생 가신지 54년만인 1710년(숙종 36년 庚寅) 봄에 안동부사 이정신(李正臣)이 유허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사헌부 집의(司憲府 執義)인 지촌 이희조(芝村 李喜朝)가 지었다.  

1820년(순조 20년) 봄에 선생의 후손 문간공 학순(文簡公 學淳)이 안동부사로 와 계실 때 목석거 유허비를 세운 바위에는 “목석거(木石居)”란 세 글자를, 은자암(隱者巖)이란 바위에는 “은자암급 산남율리 해동수양(隱者巖及 山南栗里 海東首 陽)”이란 글자 및 “서간사(西磵祠)”란 글자를 친필의 각자로 남겼다.

 

청음(淸陰) 안동(安東) 시비(詩碑)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가노라 삼각산(三角山) 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인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이 201년 1월에 쓴「청음김상헌선생시비」이다. 

청음(淸陰) 서울 시비(詩碑)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무궁화동산(구 궁정동안가)

예집터 표지석와 함께 이시비가 세워져 있다.

삼당(三塘) 영(瑛) 시비(詩碑)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수월당(水月堂) 충의비(忠義碑)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임진왜란시 수월당(水月堂) 태(兌)공의 충의를 기리고자 2010년에 건립했다.

퇴우당(退憂堂) 수흥(壽興) 유적비(遺跡碑)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

2008년 장기발전연구회가 건립했다.


김이재(金履載) 거사비(去思碑)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내

유수 김이재 거사비

김좌근(金左根)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김좌근 영세불망비는 본래 조선조(朝鮮朝)의 철종(哲宗)11년(1860)에 안흥성(安與城)의 동문(東門)안 좌측에 세웠던 것을 지난 1987년에 현재의 장소인 안흥항 입구(정죽리)에 원형 그대로 옮겨 세운 것이다.

이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흥지역 주민들이 전복을 채취하여 임금께 진상하여 왔으나, 해마다 그 양이 증가되고 따라서 매우 어려움이 겹쳐 괴로운 곤경에 처해있으므로, 이를 선처해 달라는 진정을 하였는데, 이에 당시의 영의정이었던 김좌근이 민의를 받아들여 전복 진상을 철폐시켰다.

주민들은 이 뜻을 무척 고맙게 여겨 김공의 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영세불망의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비석의 규모는 받침돌(籠臺石)에서부터 가첨석(加첨石)까지 전체의 높가 2.24m이고, 비신(碑身)만의 높이 1.47m, 폭52㎝, 농대석 높이 22㎝, 가로 87㎝, 세로 54㎝ 그리고 가첨석의 높이 55㎝, 가로 88㎝, 세로 62㎝로 이루어진 화강석의 비석이다.

김수흥(金壽興) 후세불망비(後世不忘碑)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내

부사 김수흥 불망비

김희순(金羲淳) 불망비(不忘碑)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관찰사 김희순 불망비


김수근(金洙根) 추사타루비(追思墮淚碑)

문경새재 교귀정 뒷편

문경새재에 세워진 송덕비는 대체적으로 문경현감 또는 경상도 관찰사의 것이 대부분인데 상주목사 이익저(李益著)불망비와 안동부사를 지낸 김수근 타루비는 이지역과 무관된 인물들의 비석이다.

김수근 타루비는 1관문과 2관문 중간사이에 있는 교구정에서 2관문 쪽으로 약 2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몇 년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교귀정 정비공사를 하면서 주변이 더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비석은 원래 한 칸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었으나 비각은 없어지고 주춧돌 4개와 주춧돌을 연결하는 장대석만 남아 있다.

국내에는 흔치 않은 명칭인 타루비(墮淚碑)란 중국 晋나라 때 양양지방 사람들이 양고의 선정을 잊지 못해 그의 비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타루비는 안동부사를 지낸 김수근을 기리기 위해 남선, 임동, 재산 등 안동부 소속 38방 사람들이 함께 세운 것이다.

비는 비신, 개석, 대좌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신은 오석, 개석과 대좌는 화강암이다.

김교근(金敎根) 선정비(善政碑)

경기도 광주시 남한상성내

유수 김교근 선정비


김대근(金大根) 선정비(善政碑)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순찰사 김대근 선정비

김선근(金善根)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온천공원

부사 김선근 영세불망비비


김정근(金禎根)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관찰사 김정근 영세불망비

김세균(金世均) 유애비(遺愛碑)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관찰사 김세균 유애비 


김병기(金炳冀) 송덕비(頌德碑)

여주시 북내면 송천리 신륵사 경내

1858년(철종 9)에는 순원왕후(純元王后)가 공에게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하여 불전(佛殿)·선료(禪寮)·종루 등을 중수하게 하였고 이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김병기(金炳冀) 구휼비(救恤碑)

여주시 상동 근린공원 영월루

1856년(철종 7) 4월 여주읍에 대화재가 나서 가옥 1,000여 호가 불에 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왕이 사자(使者)를 현지에 보내어 위로하고 구제하여 주었으며, 복구에 힘쓰도록 왕실 내탕금(內帑金)의 은자(銀子)와 단목(丹木)을 하사하였다.

또 당시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이던 여주 출신의 김병기(1818~1875)가 사재(私財)로 양곡 1,000석을 내어 휼민(恤民)을 구제토록 하였다.

이에 김병기의 공적을 기리고자 구휼비(총 높이 168㎝)를 세운 것이다. 


김병주(金炳㴤)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울산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1861년 9월에 건립한 비로 높이 100㎝ 너비 36㎝이다.

비의 전면에 직제학김상국병주영세불망비(直提學金相國炳㴤永世不忘碑)라는 비의 제목과 김병주의 선정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세운 날자와 주체가 세겨져 있다.

울산지역에 부임한적이 없는 관료의 선정을 기리는 흔치 않는 사례의 비이다.


김좌근(金佐根) 기실비(紀實碑)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137

1860년에 건립한 비로 높이 167㎝ 너비 58㎝이다.

김좌근 기실비의 앞면에는 ‘전령의정 김공좌근 기실비(前領議政金公左根紀實碑)’라고 새겨져 있다. 서우순(徐佑淳)이 찬(撰)하고 썼다.

원래 이비는 논에 있었으나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