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와집(夢窩集)

저자 : 문정공(상헌)파  창집(昌集)

생(生) : 1648.10.29

졸(卒) : 1722.05.02

계축(癸丑)진사(進士) 갑자(甲子)문과(文科) 영의정(領議政) 기사(耆社) 

조선후기 문신 김창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8년(추정)에 간행한 시문집.
이 책은 김창집의 종손 김원행(金元行)의 후서(後序)로 보아 1758년(영조 34)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0권 5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답한 사(辭) 1편과 약 170수의 시가 실려 있다. 또한 현존본은 문집이 이루어진 뒤 정조가 지은 시 1수가 추록(追錄)되어 있다.
권2도 역시 시가 실려 있는데 총 110수 정도이다. 만시(挽詩)와 명릉지감(明陵志感) 등이 실려 있다.
권3은 「연행훈지록(燕行塤篪錄)」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를 수록한 것이다. 1705년(숙종 31) 그가 동생 김창업(金昌業)과 함께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형제가 서로 시를 지어 화답한 내용이다.
앞부분에 김창흡(金昌翕)의 서문이 있고 끝에는 그와 함께 노론사대신의 한 사람이었던 이이명(李頤命)의 제문(題文)이 붙어 있다.
이 시는 비록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교의 춘추대의(春秋大義)와 정치적인 배청의식(排淸意識)이 강렬하게 노출되어 있는 점이 돋보인다.
또한 초두에 사신으로 떠날 때 숙종이 지어준 어제시(御製詩) 2수가 실려 있다.
권4는 「남천록(南遷錄)」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이다. 그의 말년에 거제도(巨濟島)로 귀양가는 동안과 그곳에 있을 때의 시문들과 당시 정치적 문제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덧붙어 있다.
700구가 넘는 「술회(述懷)」라는 장편과 사약을 받고 죽을 때 지은 「절필(絶筆)」 등이 그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이밖에 두보(杜甫)의 시에서 뽑아놓은 32수의 「두시집구(杜詩集句)」와 위응물(韋應物)의 시 21수를 수록한 「위시집구(韋詩集句)」 등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권5에서 권9까지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힌 상소문이다. 대개 내용은 노론의 편에서 소론을 반박한 것이거나 자신의 감회와 입장을 밝힌 것 시폐(時弊)를 논한 것 등이다.
권9의 「정청파후여삼대신연명청대리차(庭請罷後與三大臣聯名請代理箚)」는 병약한 경종에게 세자인 영조를 대리청정(代理廳政)하게 하자는 내용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게 한 상소문이다.
권10은 21수의 의(議)로서 평소 복제(服制)·과거(科擧) 등 주요한 문제에 대해 건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끝부분에 아들 김제겸(金濟謙)의 시문집 『죽취고(竹醉藁)』가 부록으로 함께 붙어 있다.김창집은 사상적으로 크게 중요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형제들의 학문적 경향이나 가학(家學)의 계통으로 보아 이이(李珥)에서 송시열(宋時烈)로 이어지는 기호학파(畿湖學派)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시문은 강한 정치적 특성을 보이는 반면 시에서는 평화진담(平和眞澹)의 기풍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시를 자평하여 “첩문(疊文)·첩운(疊韻)을 꺼리지 않고 기실(記實)에 치중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