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집(農巖集)

저자 : 문정공(상헌)파  창협(昌協)

생(生) : 1651.01.02

졸(卒) : 1708..

기유(己酉)진사(進士) 임술(壬戌)문과(文科) 전문형(典文衡) 예조(禮曹)판서(判書)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창협의 시·소·서(書)·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42권 15책. 활자본. 부록 2권을 포함한 원집 36권 속집 2권 별집 4권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증보 간행되었다.
원집 34권은 김창협이 사망한 다음해인 1709년(숙종 35)에 문인 김시좌(金時佐) 등이 그 유문을 수집하고 1710년에 아우 창흡(昌翕) 등이 활자로 출간한 것이다. 김창흡의 서(序)가 있다.부록 2권은 1754년(영조 30)에 손자 원행(元行)이 편찬하였다.
이것을 안동부사 조돈(趙暾)이 원집과 합쳐 중간하였다. 이 중간본은 36권 18책 목판본이다.
원집의 김창흡의 서와 원행의 발이 있다.속집 2권에는 원집에 편입되지 않은 선부군행장(先府君行狀) 및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등 김수근(金洙根)이 수습한 중요한 글들이 실려있다.
1854년(철종 5)에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 속집은 원집과 합편한 것으로 김수근의 속집발(續集跋)이 추가되었다.별집 4권은 김영한(金寗漢)이 서상춘(徐相春)과 합력하여 원속집에서 빠진 그 밖의 유문을 수합한 것이다. 42권 15책으로 1868년(고종 5)에 간행하였는데 김영한의 중간발이 덧붙었다.
원집 권1∼6에는 부 4수 시 770여수 권7∼9에는 소·차(箚) 60여편
권10에는 계(啓) 1편 의(議) 1편 강의 2편
권11∼20에는 서(書) 275편
권21·22에는 서(序) 38편
권23·24에는 기 22편
권25에는 제(題)·발 16편 교서 2편 전장(箋狀) 2편 상량문 2편 찬(讚)·명(銘) 4편 축사 1편 혼서(昏書) 1편
권26에는 잡저 1편 권27에는 묘지명 18편
권28에는 신도비명 1편 묘갈명 2편 묘표 6편 행장 2편
권29·30에는 제문 12편 애사 6편
권31∼34에는 잡지가 실려 있다.속집 권1·2에는 행장·서(書)·묘지·설 각 1편이 실려 있다.
별집 권1에는 시 2수 서(書) 9편 서(序)·제문·행록·시책(試策) 각 1편이 있다.
권2∼4에는 부록으로 사제문·제문·어록이 실려 있다.이 가운데 「논퇴율양선생사단칠정설 論退栗兩先生四端七情說」에서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가 아직 밝히지 못한 것을 천명하였다.즉 단(端)과 정(情)이 다같이 성(性)의 발동인 이상 이(理)와 기(氣)가 공발(共發)인 것은 이이의 뜻에 찬동하나 사단은 이를 주(主)하여 명언(名言)하고 칠정은 기를 주하여 명언하는 것은 이황의 의견이 옳다고 하였다.
원집 권7에 실려 있는 「관학청백관상복일종고례소 館學請百官喪服一從古禮疏」 등 일련의 상소문은 서인과 남인 사이에 있었던 예송문제(禮訟問題)의 연구자료로서 매우 값진 것이다.
권8의 「사호조참의소 辭戶曹參議疏」는 그의 문장력을 과시한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온 것이다.
속집 권2에 붙인 「사단칠정설」은 그의 이학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논설이 되고 있다.
원집 권25 잡저의 「동음대 洞陰對」는 영평에서 은거할 때 지은 것이다. 그의 기개가 잘 나타나 있는 글이다. 여기서 그는 호환이 두렵다 하나 인간 세상에는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비유하여 유음(幽陰)에 숨어 사는 자신의 뜻을 완곡하게 설명하고 있다.
뒷날 갑술환국으로 김수항(金壽恒)이 복권되고 작자에게 예조판서·대제학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끝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권34 잡지 외편에 있는 각가시문(各家詩文)에 대한 비평은 저자의 고문파 문장가로서 탁월한 문학비평가로서의 식견을 후인에게 재인식시키는 좋은 자료이다.
우리 나라 문학비평사에 있어 그 자료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명인과 송인의 시학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이색(李穡)·이규보(李奎報) 당대의 한학사대가인 장유(張維)·이정구(李廷龜)·이식(李植)·신흠(申欽)에 이르기까지 비평하였다.
그의 수준 높은 감식안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 경문사에서 『농암전집』으로 영인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