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와공(牖窩公) 이익(履翼)


1743-183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보숙(輔叔), 호는 유와(牖窩), 시호는 간헌(簡獻). 1

785년 알성문과 갑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었다. 1786년 홍문관부교리가 되어 1787년 함경도 경원에 익조(翼祖), 도조(度祖)를 기념하는 비를 세울 것을 건의하여 받아들여졌다. 이후 용진만호(龍津萬戶)에 특보되었다.

1788년 교리가 되어 오익환의 죄를 탄핵하다가 이성(利城)에 유배되었다. 그뒤 유배에서 풀려나 1790년 장령(掌令)과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내고, 1791년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諫),1792년 충청도관찰사 등의 요직을 지냈다.

1793년 안동부사로 재직시 환곡미납을 이유로 유홍춘에게 내린 형벌이 과다하여 죽게 되자 안동사람들의 소청에 따라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 이조참의와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다.

1795년 승지,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1798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뒤, 1799년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한 뒤 벽파(僻派)가 정권을 장악하자 시파(時派)의 김이익은 진도군 금갑도에 유배되었다.

1805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1807년 안동 김씨가 집권하면서 재기용되어 공조 예조 병조 형조판서와 수원부유수, 대사헌,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812년 대호군(大護軍)으로 치사(致仕)하고, 봉조하(奉朝賀)를 받았다.

그가 저술하고 필사한 책들은 주로 금갑도에 유배시 만들어진 것으로 40여 책이 된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국문학 작품으로 시조집 『금강영언록(金剛永言錄)』, 가사 <금강중용도가(金剛中庸道歌)>, 한시에 국역을 한 <금강유경편(金剛牖警編)>, 한문 저서로서 『금강계몽(金剛啓蒙)』, 『금강계몽속편』, 『금강학공편(金剛學孔編)』, 『금강경(金剛鏡)』, 『금강항다편(金剛恒茶編)』, 『형빈상목(荊濱常目)』, 『서주해동몽선습(書註解童蒙先習)』, 『증보동몽선습장구(增補童蒙先習章句)』 등이 있다. ‘

금강’이라는 용어를 책제목 앞에 붙인 것은 <금강중용도가>에 의하면, 꿈에 정조가 ‘금중강(金中剛)’이라는 약을 주었는데 이를 기리는 연군지정(戀君之情)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시조집 『금강영언록』은 총 56수로 구성되어 있으나, 6수가 낙장(落張)으로 인해 전해지지 않고 50수만 남았다.

내용은 임금에 대한 그리움, 해, 달, 꽃, 새, 술, 물고기, 바다, 시조 등의 사물, 권학(勸學), 중용의 길과 장부의 도량, 늙음, 귀양에 관한 것들을 담고 있다. <금강중용도가>는 임금을 그리는 충정과 유배의 심정, 중용사상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금강유경편>은 오언절구의 한시로서 총 89구로 이루어진 교훈시이며, 국문번역을 동시에 싣고 있다. 그 외에 한문 저서들은 『주역』, 『사서(四書)』, 『동몽선습』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