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大司憲) 이희(履禧)


1727(영조 3)∼1797(정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치응(稚膺)이고 호는 지래헌(知來軒)이다.

문충공 상용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경행(景行)이고, 어머니는 이정상(李鼎相)의 딸이다.

1759년(영조 3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1769년 홍문관부수찬으로 재임시 박세채의 문묘 출향(黜享)을 상소한 중학유생 김정렬을 힘써 옹호한 것이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서인(庶人)으로 깎이고 귀양을 갔다.

그러나 곧 이어 풀려났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진하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발탁되었으나 병으로 가지 못하였다. 그 뒤 김해부사로 있을 때 흉년이 들자 백성의 구휼에 힘썼으며, 경직에 복귀한 뒤 성균관대사성·사간원대사간을 지냈다.

1792년(정조 16) 동의금부사로 죄인 홍명호 등을 소극적으로 다스린다고 고신(告身)을 추탈당하기도 하였으나 곧 회복되어 대사헌에 이르렀다.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석실에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