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녕위(東寧尉) 현근(贒根)


동녕위 현근은 판의금부사 한순(漢淳)의 아들로 어릴때 이름은 승현이다.승현이란 이름은 혼인전까지 사용하고 혼인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자(字)는 성희(聖希)이고 1810년에 출생하여 1868년에 졸하였다.

 부인은 명온공주(明溫公主)로 순조와 순원황후의 첫째딸이다.
명온공주는 어릴때부터 병약하여 1832년 세상을 떠났다.

한근은 1830년 효명세자의 국상에 종척집사(宗戚執事) 향관(享官)에 임명되었고 1834년 순조의 국상에도 종척집사(宗戚執事)와 빈전향관(殯殿享官)에 임명되었다. 1837년(헌종 3) 4월 20일 주청 정사(奏請正使)가 되어 청나라로 출발하였고 8월 사행의 성공으로 전지 20결(結)과 노비 7구를 하사받았다. 1846년(헌종 12)에도 동지 겸 사은 정사(冬至兼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3년(철종 14) 12월 철종(哲宗)의 국상 때에도 종척집사에 임명되었다. 1864년(고종 1) 2월 20일에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가 되었고 4월 7일에 사옹원 제조(司饔院提調)가되었다. 1865년(고종 2) 3월 13일에 다시 내의원 제조가 되었고 8월 4일에는 사직서 제조(社稷署提調)가 되었으며 10월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가 되었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명온공주가 궁밖에 살림을 차리자 1824년 9월 8일 효명세자가 공주의 집을 다녀갔고 1826년 3월 28일에 순조와 효명세자가 함께 공주의 집을 다녀 갔다

1832년 6월 13일 오랜 투병끝에 23세의 나이에 명온공주가 사망하였다. 순조는 한달전에 사망한 북온 공중의 예에 맞추어 진행하도록 하고 직접 명온 공주의 집에 행차 하였다.

김현근의 묘소는 현재의 고려 대학교 부근인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조성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조선 총독부 고시에 따른 토지 구획 정리로 인해 망우 공원묘지로 이장되었고 부인 명온 공주와 합장하였다.

 

 


      동녕위 현근과 명온공주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