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참판(工曹叅判) 연근(淵根)


1795년(정조 1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묵(稚黙)‧원부(元溥)이다.

조부는 김이석(金履錫)이고, 부친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전행예조참판(前行禮曹參判) 김학순(金學淳)이다. 외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용모(李龍模)이고, 처부는 교리(校理) 홍승규(洪勝圭)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에 진사 2등 13위로 합격하였고, 음직(蔭職)으로 부사과(副司果)‧순천부사(順天府使)‧위솔(衛率)‧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854년(철종 5) 순천부사 재임 시절 고을을 편안히 다스리지 못했다는 전라좌도암행어사(全羅左道暗行御史) 조헌섭(趙憲燮)이 올린 서계(書啓)로 인해 벌을 받았다.

1856년(철종 7) 황해도감사 재임 시절 황해도에서 발생한 수재(水災)로 인해 문화(文化)‧송화(松禾)‧은율(殷栗)‧평산(平山) 지역 백성들이 집이 떠내려가고 곡식들은 모두 물에 잠기는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정을 치계(馳啓)하여 백성들이 거처할 곳과 구휼할 곡식 등을 마련하여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지 않도록 하는 등의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슬하에 아들로 복온공주(福溫公主)의 부마(夫馬)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