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판서(工曹判書) 학진(鶴鎭)


1838(헌종 4)∼1917.

관료·33세때인 1871년(고종 8)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874년 홍문관 교리를 역임하였고 1882년 정3품으로 승진하여 승정원 동부승지 호조 참의를 지냈다.

1884년 외무아문 참의를 역임하였으며 1885년 동래부사 겸 부산항 감리를 지냈다. 1887년 이조 참의 한성부 소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1890년 종2품으로 승진하여 형조 참판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1892년 외무아문 협판을 역임하였고 1893년에는 이조 참판을 지냈다.

1894년에 도승지가 되었고 정2품으로 승진하여 형조·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전라도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전라감사 김문현의 후임으로 감사에 임명되었다. 그해 9월 농민군이 본격적으로 재봉기할 채비를 갖추자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시인하고 자진 사퇴하였다. 일시 휴직하였다가 1897년 다시 임용되어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1899년 홍문관 학사·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그 뒤 시종원경·태의원경을 거쳐 1906년 홍문관 태학사를 역임하였다. 1905년 1월 일제의 경찰 사무 침탈과 친일파가 수립한 제도를 비판하는 최익현의 상소를 적극 옹호하였다. 동년 3월 일제의 국권 침탈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 구금되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는 일제에 순응해 갔다.

1907년 70살이 넘은 정2품 이상의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인 기사에 들어갔다. 종1품으로 승진하여 규장각 대제학을 지냈고 문학에 대한 식견이 탁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