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선공(海仙公) 병수(炳秀)


경상북도 문경(聞慶) 사람이다.

부 찬근(瓚根)과 만익(晩翼)의 딸 진성이씨 사이에서 1879년 3월 1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15일 신북면 갈평(身北面葛坪)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평소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고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1908년(융희 2)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의 선봉장에게 자신의 재산을 처분한 돈을 군자금으로 제공한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문경으로 이사하였다.

그후에도 항상 독립을 염원하여 오다가 1919년 4월 15일 오후 8시경 신태인(申泰仁)과 함께 도로 보수를 위해 나온 부역 인부 40여명을 규합하여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이때 일본 헌병 3명이 와서 총검으로 위협하며 해산토록 하였으나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고 이에 대항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결국 이해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상주(尙州)지청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