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한(啓漢)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자(字)는 신호(信浩)이며 1868년 6월 17일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경북 안동 읍내 시장에서 유동붕(柳東鵬)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안동 읍내의 의거는 기독교 계통과 천도교 계통의 두 갈래로 각기 계획되어지다가 추진과정에서 서로 긴밀히 연락하면서 합동시위의 형태로 일어났다.

이들은 읍내 장날인 3월 18일 오전 11시를 기해 거사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각기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그리하여 김계한은 거사 당일에 유동붕·송기식(宋基植)·송장식(宋章植)·권중호(權重浩)·이종록(李鍾祿) 등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태극기와 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1백 5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경은 총검으로 탄압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켰는데 만세시위의 불길은 오후 6시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났고 오후 12시경에는 3천여 명의 군중이 시내 각처에서 모여들면서 군청과 경찰서 등 일제 기관을 포위하며 만세시위를 거세게 전개하였다.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2일 경성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