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문근(汶根)


1801(순조 1)∼1863(철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자는 노부(魯夫).
아버지는 김인순(金麟淳)이며 김이순(金頤淳)에게 입양되었다.
형이 이조판서 김수근(金洙根)이며 사위가 철종이다.
1841년(헌종 7) 음직으로 가감역(假監役)이 된 뒤 현감을 지내다가 1851년(철종 2) 딸이 왕비로 책봉되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책봉 영돈녕부사가 되었고 제2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또 금위대장·총융사·훈련대장 등의 군사요직을 거쳤다.
이듬해 죽자 철종은 부기(副器) 일부를 수송하도록 하고 성복일에는 승지를 보내어 제사지내고 3년간 녹봉을 그대로 지급하며 예장(禮葬) 등속은 전례를 따르도록 하였다. 김문근은 몸이 비대하여 포물부원군(包物府院君)이라고 불리곤 했는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필(細筆)에 능했다고 한다.
 묘는 대신면 초현리(草峴里)에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순(忠純)이다.

김문근 졸기

○己酉/領敦寧府事永恩府院君金汶根卒。敎曰: "敦厚之姿, 可以範世, 遠大之識, 可以宰物。 若夫忠愛之性, 義理執守之確, 卽此家家法。 而謹愼儉約四字, 奉我慈訓, 蚤夜服膺, 十有餘年, 如一日矣。 況年前一疏, 又可以有辭於百世之下者乎? 予小子待遇委毗之隆, 不但爲其處地而然耳。 病患沈篤, 非不思念, 而豈意今日逝單, 遽至乎? 震衋之極, 無以爲心。 卒領敦寧永恩府院君喪, 東園副器一部輸送, 成服日, 遣承旨致祭。 仍令恤孤, 賻襚之需, 從優輸送, 祿俸, 限三年仍給。 禮葬等節, 照例擧行, 易名之典, 不待諡狀。 成服前議定。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영은 부원군(永恩府院君)김문근(金汶根)이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돈후(敦厚)한 자질은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하였고, 원대(遠大)한 식견은 여러 사람을 주재(主宰)할 만하였다. 그리고 충애(忠愛)스런 성품과 의리를 굳게 지키는 확고함은 곧 이 집안의 가법(家法)인 것이다. ‘근신 검약(謹愼儉約)’ 네 글자로 우리 자훈(慈訓)을 받들어 주야로 10여 년을 하루처럼 복응(服膺)하여 왔다. 더구나 연전에 올린 한 통의 소장(疏章)은 또 백세(百世) 뒤에도 말이 전해질 것임이겠는가? 나 소자(小子)가 융숭하게 위임하여 대우한 것은 그의 처지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병환이 위독해질 때 급박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오늘 졸서(卒逝)했다는 단자(單子)가 갑자기 이를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는가? 너무도 슬픈 나머지 마음을 가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졸(卒)한 영돈녕의 상(喪)에 동원 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수송하여 주고 성복(成服)하는 날에는 승지(承旨)를 보내어 치제(致祭)하라. 이어 고자(孤子)를 돌보아 위로하고 부의(賻儀)와 수의(襚衣)에 드는 물품을 넉넉하게 수송하며 봉록(俸祿)은 3년을 기한으로 종전대로 지급하게 하라. 예장(禮葬) 등의 절차는 전례에 따라 거행하고 역명(易名)의 은전(恩典)은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 없이 성복(成服)하기 전에 의정(議定)토록 하라."하였다.

 

 

 

 

 

 

 

 

 

 

 

 

 

 

 

 

 


             영은부원군 문근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