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조대사(學祖大師)


호는 등곡(燈谷)·황악산인(黃岳山人).
아버지는 계권(係權)이다.
신미(信眉)·학열(學悅) 등과 함께 선종의 승려로서 세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여러 고승들과 함께 많은 불경을 국어로 번역 간행하였다.

학덕이 뛰어난 당대의 명승이었으며 웅문거필(雄文巨筆)의 문호로 칭송되었다.
왕실의 귀의를 받아 세조 이후 중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사를 일으켰다.
1464년(세조 10)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임금을 모시고 신미·학열 등과 함께 대법회를 열었다.

1467년 왕명으로 금강산유점사(楡岾寺)를 중창하였고 1488년(성종 19)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으로 해인사 중수 및 대장경판당을 중창하였다. 1500년(연산군 6) 왕비의 명으로 해인사의 대장경 3부를 간인(刊印)하고 그 발문을 지었으며 1520년(중종 15) 왕명으로 다시 해인사 대장경 1부를 간인하였다.

그가 국역한 불전(佛典)을 살펴보면 『지장경언해(地藏經諺解)』가 초기에 언해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양대군에 의하여 완성된 『금강경삼가해언해(金剛經三家解諺解)』를 자성대비(慈聖大妃)의 명에 의하여 교정 인출하였다. 한편 1476년에는 『천수경(千手經)』을 언해 교정하였으며 1482년에는 세종 때부터 시작되었다가 중단된 『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을 역시 자성대비의 명으로 번역 완성하였다.

그밖에 다소 불분명하지만 인수대비의 명에 의하여 언해 인출되었다는 점과 그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오대진언(五大眞言)」·「불정심다라니(佛頂心陀羅尼)」·「진언권공(眞言勸供)」 또한 그의 번역일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