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大司憲) 노순(魯淳)


721년(경종 1)~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증약(曾若)이다. 증조부는 김시걸(金時傑)이고, 조부는 김영행(金令行)이며, 부친은 김이적(金履迪)이다. 외조부는 송수량(宋秀良)이고,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처부는 정윤적(鄭允迪)과 최명걸(崔命傑)이다.

1763년(영조 3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764년(영조 40) 충량과에 갑과 장원으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헌납(獻納)‧필선(弼善)‧승지(承旨)‧강릉부사(江陵府使)‧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1770년(영조 46) 주강(晝講)에서 영조가 『소학(小學)』의 「입교편(立敎篇)」을 외우면서 뜻을 물을 때, 내용에 빗대어 영조에게 개인 생각을 내비쳤다가 영조로부터 말에 뼈가 있다는 진노를 사서 벌을 받았다. 1772년(영조 48) 건명문(建明門)에서 조참(朝參)을 행할 때 영조가 선유문(宣諭文)을 짓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게 시키자 정호인(鄭好仁)‧조재준(趙載俊) 등과 함께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가 함경북도 삼수(三水)로 유배되었다.

이후 충신 김상용(金尙容)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방면되었다. 1774년(영조 50) 왕명으로 지어올린 칠언율시(七言律詩)에서 수석(首席)을 차지하여 상을 받았다. 1776년(정조 즉위년) 강릉부사 시절 불법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재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