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공(孝文公) 난순(蘭淳)


1781(정조 5)∼1851(철종 2). 조선 후기의 문신·서예가.

자는 사의(士猗) 호는 벽곡(碧谷).

김제겸(金濟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원행(金垣行)이고 아버지는 군수 김이유(金履裕)이며 어머니는 유광석(柳光錫)의 딸이다.

1804년(순조 4)에 진사가 되고 1813년 증광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검열·어사·이조참의·보덕·홍문관부제학·황해도감사·이조참판·호조참판·형조판서·평안도관찰사·대사헌·우참찬 등을 거쳐 1841년(헌종 7)에는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그 뒤 우참찬·형조판서·판윤·예조판서를 거쳐 1848년 판돈녕으로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고 수원부유수·형조판서를 지냈다. 과거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며 안동김씨인 이유로 일생을 통하여 관력이 순조로웠으나 뚜렷한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문장과 글씨가 뛰어나 효현왕후(孝顯王后)의 지문(誌文)·존호옥책문(尊號玉冊文)·시책문(諡冊文)·제문·행장 및 음기(陰記)를 짓고 썼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부친 김이유가 난순에게 보낸 편지와 난순이 형 지순에게 보낸편지 40여편을 묶은 서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