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참판(禮曹叅判) 선행(善行)


1716(숙종 42)∼1768(영조 44).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술부(述夫). 김수일(金壽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대(金盛大)이고 아버지는 김시서(金時敍)이며 어머니는 송이석(宋彛錫)의 딸이다.

1739년(영조 15)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가 되고 이어 지평(持平)·교리(校理)·수찬(修撰)·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749년 헌납(獻納)·사간·보덕(輔德)을 거쳐 1755년 도승지·예조참판이 되었다. 1756년 수원부사 재직시에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지경이므로 창고에 남아 있는 향미(餉米: 군량미)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1757년 대사헌이 된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임하였는데 특히 인륜을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엄격하였다.1760년 도승지·함경도관찰사를 거쳐서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1764년 조참(朝參)에서 간언이 없다고 영조가 책망하자 옛 성왕의 간하는 법은 언관을 책하는 데 있지 않으므로 대신을 책하지 말라는 소를 올렸다가 대사헌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예조참판을 지냈고 1766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68년에는 다시 대사헌과 좌윤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