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참판(吏曹叅判) 정규(貞圭)


자는 도지(道知)이다.

아버지는 김병문(金炳聞)이나 김병국(金炳國)에게 입양되었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었으나 안산신도시 건설에 따른 도시화로 1979년 화장되었다.

묘표의 비문은 양부(養父) 김병국이 찬(撰)하였고 글씨는 양자(養子) 김용진(金容鎭)이 썼으며 지운영(池雲英)이 전각하였다.

1882년(고종 19) 관학응제시(館學應製試)에서 사마시의 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구도응제(九度應製)에 참여하여 전시(殿試)에 올라갔다.

그 뒤 예문관검열겸춘추관전적·사간원정언·동학교수·병조좌랑·홍문관부교리·홍문관부응교·성균관사성 등을 거쳤다.1886년(고종 23) 승정원동부승지와 이조참의·호조참의·예조참의·형조참의를 거쳐 병조참지·돈녕부도정·세자시강원사서를 역임하였다.

1890(고종 27) 육조의 참판 동지춘추관사·동지의금부사·동지경연사·동지돈녕부사·한성부우윤 등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경연특진관·동지중추부사·동지성균관사·사헌부대사헌을 역임하다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