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周漢)


전라북도 금산(錦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鎭安郡朱川面朱陽里)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주양리에 있는 화동학교(華東學校) 학생인 양해관(梁海寬) 등에게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권유하고 이날 오후 4시경 화동학교 교정에서 학생·주민들을 지휘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일단 자진 해산하였다.

이날 밤 10시경 다시 학생·주민을 선동하여 이노봉(李老奉)의 집 앞 논에서 6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4월 23일 광주(光州)지방법원 전주(全州)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