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장관(勞動部長官)  호진(浩鎭) |
김호진(金浩鎭)은 1939년 경북 안동에서 김종규(金宗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화재(華載)이고 호(號)는 월계(月溪)이다.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24세 때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동기생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하와이 주립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고려대교수로 돌아왔다. 그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공비들에게 살해되는 유년기의 상처를 갖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평생을 연구해온 「노동」이란 화두는 『노는 사람은 굶어야 한다』고 가르친 아버지와 홀로된 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일해야 했던 가난한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레 배웠다. 그는 『새벽녘 어머님이 베를 짜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 어머님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과 노동대학원 1 2대 학장을 지내면서 노동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분을 쌓아 노동문제에 대한 현실감각도 갖추고 있다. 국민회의 정치개혁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제2건국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시절인 15대 대선기간에는 국민회의 길승흠교수가 이끌던 김대중대통령후보 자문 교수단인 ‘새시대포럼’의 창립인사로 참여했다. 그는 노사정위원장시절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로 인해 노사정위를 요식적인 절차로 생각하는 정부 일각의 자세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자 출신이어서 추진력이 부족한게 아니냐”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그러나 조용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을 보여줘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노력형 자수성가형으로도 꼽힌다. 이후 노동문제연구소 초대 소장과 노동대학원장을 거쳤다. 취미는 등산이며 부인 이우령씨와의 사이에 김석한(金碩漢) 김주한(金周漢) 김준한(金準漢) 3남을 두고 있다. |
2000.08.07 | 노동부장관(勞動部長官) 17대 |
진사공(영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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