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司成)  완진(完鎭) |
1877년(고종 14) 2월 17일∼1948년 2월 17일. 일제 강점기 관료. 호는 우봉(雨峰)이다. 본적은 서울 종로구(鍾路區) 명륜동(明倫洞)이다. 1905년(광무 9)부터 1907년(융희 1)까지 관립한성영어학교(官立漢城英語學校)에서 수학한 후 1907년(융희 1) 학부서기랑(學部書記郞)과 1908년(융희 2) 학부주사(學部主事)로 재직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이후부터 1911년까지 충청남도 도서기(忠淸南道道書記)로 재직하였으며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충청남도 보령(保寧)과 아산(牙山)의 군수로 재직하다가 1918년부터 1939년까지 경학원사성(經學院司成)을 지냈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유학(儒學) 교육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성균관을 폐지하고 총독부의 정책과 지배이념을 홍보하는 데 유학자들을 이용하기 위하여 조선총독부의 직속기관인 경학원을 설립하였다. 약 21년 동안 경학원사성으로서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는 일본 황실의 주요 의례에 참여하거나 일제의 지배체제 아래에서 충효이념을 강조하는 강연 등을 하였다. 경학원사성으로 재직 중 일본 정부로부터 1928년 쇼와[昭和]대례기념장을 받았으며 이후 경학원 부설 교육기관으로 1930년에 설립된 명륜학원(明倫學院)의 간사(幹事)와 단군신전봉찬회(檀君神殿奉讚會)의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
문정공(상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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