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병희(炳僖) |
1886년(고종 23)∼1928년.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 1886년(고종 23) 대전 유성구(儒城區) 송정동(松亭洞)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귀국 도중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19년 7월 미국에서 온 박용만(朴容萬)의 지도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민복(李敏馥) 조성환(曹成煥) 서울 출신 백준(白準) 등과 함께 서북파(西北波)를 제외한 기호파(畿湖波)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편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간도 길림 지방의 동지들과 협조하여 대한국민군(大韓國民軍)을 조직 총사령부를 블라디보스톡에 두고 조성환을 총사령관에 박용만을 총참모에 임명하기로 약속하고 다른 여러 동지들과 군자금을 모으는데 애썼다. 박상환(朴祥煥)과 함께 당시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 교장 김성수(金性洙)와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의 부호 민영달(閔永達)에게 자금을 청하러 가던 도중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조선일보 북경 상해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김원봉(金元鳳)을 단장으로 하는 의열단과 협력하여 일제 요인 암살과 관공서 파괴를 시도하였으며 1925년 신민부가 조직된 뒤에는 신민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6년 국내 독립운동을 위하여 귀국하던 중 1927년 4월경에 체포되어 김연수(金演洙) 여봉구(呂鳳九) 이기진(李基珍) 등과 함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8년 4월 26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1968.. | 독립운동(獨立運動) 대통령표창 | |
1991.. | 독립운동(獨立運動) 건국훈장 애국장 |
문정공(상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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