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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大司諫)  김영근(金英根)


1805년(순조 5)∼1885년(고종 22).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화(穉華) 호는 청연(淸淵).

증조부는 승지(承旨) 김문행(金文行)이고 조부는 황주목사(黃州牧使) 김이탁(金履鐸)이며 부친은 재령군수(載寧郡守)를 지낸 김면순(金勉淳)이다. 모친은 이희갑(李羲甲)의 딸이고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로 군수(郡守) 남준성(南駿聲)의 딸이다.

1835년(헌종 1) 을미증광문과(乙未增廣文科)에 병과(丙科) 7등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에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가 되었고 1845년(헌종 11)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1848년(헌종 14)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등을 거쳐 다음해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이르렀다. 묘는 남양주 가운동에 있다.




[문과] 헌종(憲宗) 1년(1835) 을미(乙未)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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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문정공(상헌)파
영근(英根)
자(字)치화(穉華)
호(號)청연(淸淵)
생(生)1805년 을축(乙丑) 9월 7일
관직(官職)을미(乙未)문과(文科)
규대(奎待)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
사간원(司諫院)대사간(大司諫)
이조(吏曹)참의(叅議)
졸(卒)1885년 을유(乙酉) 9월 3일
묘(墓)남양주시(南楊州市) 지금동(芝錦洞) 성천공조(成川公兆) 다음 -- 양주미
 금면가운리
자좌(子坐)
배(配)숙부인(淑夫人)의령남씨(宜寧南氏)
생(生)1804년 갑자(甲子) 월 일
졸(卒)1878년 무인(戊寅) 1월 13일
합폄(合窆)
 부(父)군수(郡守) 준성(駿聲)
 조(祖)현감(縣監) 복내(復來)
 증조(曾祖)현감(縣監) 기운(紀雲)
 외조(外祖)음(蔭)도정(都正) 서직수(徐直修) 본(本) 대구(大邱)
20 세21 세22 세23 세24 세
문행(文行)이탁(履鐸)면순(勉淳)영근(英根)병유(炳儒)
병휴(炳休)
홍종소(洪鍾韶)
준근(俊根)
윤기일(尹夔一)
이필우(李弼愚)
심순조(沈淳祖)
이목(李木)
이효영(李孝永)
이규(李逵)
조종철(趙宗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