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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김복한(金福漢)


자는 원오(元五) 호는 지산(志山). 충청남도 홍주 출신.

189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홍문관부교리 이듬해에는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에 제수되었으며 성균관대사성·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94년 승정원승지에 제수되었다.그러나 그 해 6월에 갑오경장이 시작되자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자정(自靖)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듬해 8월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리자 이설(李偰)·안병찬(安炳瓚) 등과 같이 홍주목사 이승우(李勝宇)에게 권유해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승우가 일제와 내통함으로써 일본군에게 잡혀 투옥되었다.곧 고종의 특지로 석방되어 성균관장·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었으나 왜적과 역적들을 토벌하지 못했다 하여 사퇴하고 후진 양성에 몰두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설과 함께 이지용(李址鎔)·박제순(朴齊純)·이완용(李完用) 등 5적의 참수를 간청하는 소를 올리다가 투옥되었다.1906년에는 민종식(閔宗植)과 홍주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에도 의병 은닉과 민심 선동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공주로 압송되는 도중에 일본순검에게 무수히 구타당하고 어렵게 목숨을 건졌으나 그 후유증으로 평생 식사와 용변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었다.1910년 우리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된 뒤로는 일제의 심한 감시 속에 두문불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문인 임경호를 상경시켜 유림대표들과 협의하게 하였다.또 영남의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호서 유림을 대표해 전국 유림 137명의 서명을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巴里長書)를 발송하였다.뒤에 발각되어 모두 일본경찰에 붙잡혔는데 옥중에서 중병으로 90여일 만에 석방되었다. 1921년부터는 인지사(仁智社)를 세워 후진 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문과] 고종(高宗) 29년(1892) 임진(壬辰) 별시(別試) 병과(丙科) 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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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집(志山集)

저자 : 문충공(상용)파  복한(福漢)

생(生) : 1860.07.24

졸(卒) : 1924.03.28

임진(壬辰)문과(文科) 통정대부(通政大夫)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 

개항기 문신 김복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7년에 간행한 시문집.
김복한의 제자 신해철(申海澈) 등이 편집하여 1947년에 간행하였고 연보는 1952년에 간행되었다. 연보 권말에 김노동(金魯東)의 발문이 있다.
본집 12권 6책 연보 2권 1책 합 14권 7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53수 권2에 소(疏) 3편 전장(箋狀) 5편 경연설(經筵說) 1편 서연설(書筵說) 1편 권3·4에 서(書) 127편 권5에 서(序) 17편 기(記) 13편 발(跋) 10편 찬(贊) 3편 권6에 잡저 11편 제문 21편 고유문 4편 권7에 신도비명 14편 권8에 신도비명 3편 비(碑) 4편 묘갈명 13편 권9에 묘갈명 29편 권10·11에 묘지명 27편 권12에 묘표 11편 행장 8편 전(傳) 13편 부록으로 세계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연보 권1·2는 부록으로 제문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피집후서회(被執後書懷)」는 왜적에게 구금되었을 때 죽음까지 각오한 강개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그밖에 옥살이 할 때의 시와 당시 순절한 자 및 호란 때에 순절한 선현을 기린 시도 많다.
소 가운데 「사성균관장겸진소회소(辭成均館長兼陳所懷疏)」는 성균관장을 사직하면서 시국의 병폐와 혼란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청토매국제적소(請討賣國諸賊疏)」는 1905년 을사조약 때 역적의 처벌을 주장한 상소이다.
서(書)에는 학문에 관한 문답이 많으며 또한 당시의 친일에 대한 의분을 토로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잡저 가운데 「홍양기사(洪陽記事)」는 1895년과 1896년에 의병을 일으킨 사실과 강제 조약 때의 의분을 기록한 것이다.
그밖에 「고등재판소공사(高等裁判所供辭)」·「왜인도변문답(倭人渡邊問答)」·「경무국장박승조문답(警務局長朴承祖問答)」·「왜인현태랑문답(倭人賢太郎問答)」·「재도문답(再度問答)」·「구방전말(拘放顚末)」·「왜인고택혜성문답(倭人古澤慧誠問答)」 등은 저자가 일본 경찰들에게 취조받을 때 진술한 사실과 그 뒤 왜인과의 문답 등을 기록한 것이다.
한말 역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쇄록(瑣錄)」은 친우인 안치규(安穉圭)와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예정후사시제자(預定後事示諸子)」는 “내가 죽은 뒤에 합당한 예절로써 상장례에 임하라.”고 자식들에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통고제종문(通告諸宗文)」은 선조인 김상용(金尙容)의 종가를 구원하자는 통문이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추양사(秋陽祠)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

애국지사 지산(志山) 휘(諱) 복한(福漢)공을 모신 사당이다. 1975년 홍성군에서 건립했다.

문충공(상용)파
복한(福漢)
자(字)원오(元五)
호(號)지산(志山)
생(生)1860년 경신(庚申) 7월 24일
관직(官職)임진(壬辰)문과(文科)
통정대부(通政大夫)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
상훈(賞勳)건국훈장 독립장
저서(著書)지산집(志山集)
 나라가 망한 후 홍성에서 의병을 일키다가 여러차례 옥고를 치뤘다(國亡後擧
 義兵于洪城累經獄苦)
졸(卒)1924년 갑자(甲子) 3월 28일
배(配)숙부인(淑夫人)연안이씨(延安李氏)
생(生)1855년 을묘(乙卯) 7월 2일
졸(卒)1893년 계사(癸巳) 6월 29일
 부(父)의익(毅翼)
배(配)숙부인(淑夫人)청주이씨(淸州李氏)
생(生)1882년 임오(壬午) 월 일
졸(卒)1965년 을사(乙巳) 2월 6일
묘(墓)충남홍성서부면이호리산수동(西部面梨湖里山水洞) 0사림이 추양사(秋陽祠) 를
  세워 제향을 하고 있다 문집(文集) 이 있다
임좌(壬坐) 합폄(合窆)
 부(父)주찬(周讚)
24 세25 세26 세27 세28 세
병정(炳鼎)정균(正均)봉진(鳳鎭)복한(福漢)은동(殷東)
노동(魯東)
명동(明東)
권보상(權輔相)
홍순영(洪淳榮)
이규종(李奎鍾)
교한(喬漢)
이연익(李淵翼)
흥균(興均)
윤치주(尹致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