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연진(淵鎭) |
김연진(金淵鎭)은 김영규(金泳圭)와 청송심씨(靑松沈氏) 사이에서 5남 1녀중 장남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태어났다.자(字)는 원부(源溥)이다. 일찍이 북만주 지방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20년경 중국 봉천(奉天)에 밀파되어 만주·상해·국내간의 독립운동 연락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5년 12월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홍성에서 창립된 사상단체 무공회(無空會)의 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이어 1926년 9월에는 역시 홍성에서 무산대중의 선구자가 될 것을 목표하여 윤기순(尹己順) 등과 함께 홍성청년회(洪城靑年會)를 재조직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홍성지방 청년 사상운동의 지도적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6년에 무공회가 인력거조합을 모체로 하여 조직한 홍성노동조합(洪城勞動組合)의 부(副)조합장으로 선임되어 노동자의 권익 옹호에도 앞장섰다. 1927년 8월 25일 신간회(新幹會) 홍성지회가 설립될 때 선전부 총무간사로 선출되어 활동하였고 1928년 12월 말에는 서무부 총무간사로 전임되었다. 1929년 6월 28일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신간회 복대표대회(複代表大會)가 개최되었을 때 홍성구(洪城區)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동년 11월 24일의 신간회 제2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충남지방 특파원에 임명되어 활동하는 등 반일민족통일전선의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에는 신간회 홍성지회 서기장으로 일하다 일경에 강제 구인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1993.. | 독립운동(獨立運動) 건국훈장 애국장 |
문충공(상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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