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영진(瑛鎭)


김영진(金瑛鎭)은 김용규(金龍圭)와 은진송씨(恩津宋氏) 사이에서 188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원춘(元春)이다. 다른이름은 송종성(宋鍾成) 송적헌(宋迪憲)이다.



1920년 조병채(趙炳彩)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쟁취하기 위해 중국 길림(吉林)에서 길림군정부(吉林軍政府)를 조직하여 군무독판(軍務督辦) 겸 총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좌진(金佐鎭) 등을 도와 한국의 독립운동을 달성하자고 협의하였다.



이에 따라 윤상기(尹相起) 등 4명과 더불어 국내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이를 김좌진 장군에게 송부할 것을 계획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음력 10월 초순경 충남 청양군(淸陽郡) 규암면(窺岩面) 석동리(石東里)에 있는 임성재(任性宰)의 집을 방문하여 현금 100원과 100원의 납부지원서를 모집하였다.



그 후 노재철(盧載喆)·이치국(李致國)·이창호(李昌鎬) 등에게 전북 익산(益山)의 부호 이규석(李圭錫) 충남 임천면(林川面)의 김명규(金明奎) 구룡면(九龍面)의 박남규(朴南奎)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지시한 것을 비롯하여 충화면(忠化面)의 부호 김영만(金領滿)과 김재철(金在哲)로부터 각각 4백 원과 3백 원 석성면(石城面)의 부호 이대헌(李臺憲)으로부터 1천 원의 군자금을 모집·조달하였다. 그 후 김명수에게 임시정부 군정서(軍政署) 및 재무서(財務署)의 도장과 군자금 모집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김명수·이광호 등과 함께 충남 대천면(大川面) 황오현(黃五顯)으로부터 현금 860원을 조달하는 등 충남과 전북 등지를 순회하며 부호들을 대상으로 수천 원의 군자금을 조달하여 김좌진에게 제공하다가 일경에 의해 피체되었다.



1921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 및 강도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1995..독립운동(獨立運動)건국훈장 애국장


안동김씨대종중
문충공(상용)파
영진(瑛鎭)
자(字)원춘(元春)
생(生)1881년 신사(辛巳) 월 일
상훈(賞勳)건국훈장 애국장
 독립군 군자금모집및 조달
배(配)전주이씨(全州李氏)
생(生)1882년 임오(壬午) 월 일
 부(父)중만(重萬)
23 세24 세25 세26 세27 세
우근(祐根)병혁(炳赫)용규(龍圭)영진(瑛鎭)
학규(鶴圭)복진(復鎭)
민영두(閔泳斗)
홍규(鴻圭)복진(復鎭)
기진(基鎭)인한(仁漢)
승한(昇漢)
용한(龍漢)
복희(福姬)
이면규(李冕珪)
송재순(宋宰淳)
이창기(李昌基)
상규(相圭)택진(澤鎭)
영규(永圭)창진(昌鎭)
하진(夏鎭)
동진(東鎭)재한(宰漢)
보한(輔漢)
송재억(宋在億)
붕규(鵬圭)
이상인(李相仁)
송영기(宋英基)
이재영(李載英)
성도영(成道永)
송돈순(宋惇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