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무규(武圭) |
일제하 증산교(甑山敎)를 비롯한 종교는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특히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전라도 고부 출신의 유생 강일순(姜一淳)은 1901년 전주 모악산 아래에서 흠치교를 창도하게 되었다. 이 종교의 주문에 [흠치흠치]라는 말이 있고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이라고 되어 있어 [흠치교] 혹은 [태을교]라고 불렀다. 태을교는 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김무규는 1920년 음력 8월중 태을교(흠치교) 신자가 되어 8인조에 소속되어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상위자(上位者)로부터 1924년 갑자해(甲子歲)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帝位)에 올라 일제의 통치로부터 독립시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태을교 신자들이 모두 독립된 국가의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을 것을 굳게 믿었다. 김무규는 독립운동 자금을 징수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김무규를 비롯한 신자들이 민족 독립을 위해 태을교를 포교함에 일제 경찰은 그들을 검거하였다. 김무규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1921년 4월 22일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 고등법원에 상소를 제기하였으나 기각되어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2008.. | 독립운동(獨立運動) 건국포장 |
부윤공(상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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