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으로 정려를 세웠는데(以孝行旌閭) 비음기(碑陰記) 는 단영(丹瀛) 박영찬(朴英燦) 이짓고 서(序) 는 참의(참議) 이건춘(李健春) 이지었다
안동김씨대종중
부자정효각(父子旌孝閣)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사직서령공(생하)파 24세 병형(炳衡)과 그 아들인 성균(聖均) 父子가 모두 부모에게 효행이 뛰어나 영해부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의 유생들과 관리들이 정부에 상소하여 정효각을 고종으로부터 하사받게 됐다. 1867년에 건립된 정효각이라는 현판은 후에 영의정을 지낸 민규호가 적었다. 父子 양대의 효행을 기리는 父子 정려비 두 개가 함께 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 건립과 관련된 상소문등을 모은 기록이 양천세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