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병우(炳宇)


김병우(金炳宇)는 김신근(金信根)과 순천장씨(順天張氏) 사이에서 1880년 경북 안동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과 23일의 안동읍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기독교도(基督敎徒)와 천도교도(天道敎徒)가 연합함으로써 대대적으로 거사되었는데 그는 김익현(金翊顯)·황인규(黃仁圭)·김계한(金啓漢)·김재성(金在成)·이인홍(李仁洪) 등과 함께 기독교도의 대표로서 천도교도와 비밀연락을 취하면서 거사계획을 추진하였다.



3월 18일 오후 6시경 그는 1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하고 이튿날 오전 1시경에는 또 다시 3천여명의 시위군중과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등으로 몰려가서 애국지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이다가 일제의 발포로 부득이 해산하였다.



그후 다음 안동 장날인 23일에는 더욱 격렬한 제2차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그는 이날 오후 8시경 3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읍내 중심지를 향하여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공포를 발사하며 저지하려 하였으나 시위군중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경찰서·지방법원 안동지청을 포위하고 투석으로 대항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무자비하게도 사격을 감행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행하고 시위군중은 해산하였다. 일제의 주동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검거를 시작하였으며 그도 마침내 체포되어 이해 5울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1977..독립운동(獨立運動)대통령표창

1990..독립운동(獨立運動)건국훈장 애족장


안동김씨대종중
어담공(삼익)파
병우(炳宇)
자(字)순형(舜衡)
생(生)1880년 경진(庚辰) 12월 7일
상훈(賞勳)건국훈장애족장
 삼일운동에 참가 복역하였다
졸(卒)1936년 병자(丙子) 1월 18일
배(配)안동권씨(安東權氏)
생(生)1878년 무인(戊寅) 4월 14일
졸(卒)1945년 을유(乙酉) 8월 2일
묘(墓)안동시 화성동(花城洞) 산二
합폄(合窆)
묘표(墓表)가 있다
 부(父)수준(秀準)
 조(祖)계경(啓敬)
 증조(曾祖)영학(永學)
 외조(外祖)김기환(金基煥) 본(本) 안동(安東)
21 세22 세23 세24 세25 세
이망(履望)흥순(興淳)효근(孝根)병수(炳壽)석규(錫圭)
은규(殷圭)
하규(河圭)
권해석(權海石)
권봉주(權鳳周)
권재도(權載度)
권태묵(權泰默)
충근(忠根)병두(炳斗)동규(桐圭)
영규(永圭)
창규(昌圭)
선규(善圭)
류식우(柳湜佑)
김윤목(金閏木)
신성락(辛聖樂)
김낙천(金洛天)
신근(信根)병하(炳夏)재성(在成)
병우(炳宇)명규(明圭)
재성(在成)
인규(仁圭)
원규(元圭)
영규(榮圭)
류동붕(柳東鵬)
김일택(金一澤)
송원재(宋元載)
권영호(權寧鎬)
배영락(裵永洛)
권윤경(權允經)
권익경(權翼經)
이주영(李柱榮)
최치룡(崔致龍)
이미굉(李美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