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生員)  현규(顯奎)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병암정(屛巖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08호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월방산 봉천사 앞에 자리한 병암정(屛巖亭)은 안동 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 정자는 3-4 평 정도의 아담한 기와 집 한 채에 뒤쪽으로는 병풍을 두른 듯 바위 돌에 에워싸여 있으며 석벽 상단부에 병암(屛巖)이라는 각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정자 앞에는 바위를 뚫고 올라온 반송이 250여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정자의 구조는 출입문이 있고 전경을 바라보는 전면에 큰 문이 하나 있으며 옆으로는 환기를 위한 작은 문하나 그리고 아궁이를 내다볼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다. 내벽에는 붙박이 장이 있어 옷가지나 이불 등을 넣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방을 제외한 공간은 대청마루가 ㄱ 자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것은 출입문은 문지방이 아주 낮지만 밖을 내다보는 전망문은 바닥에서 40센티 정도 문지방이 높다. 그 이유를 종손에게 물어보니 출입문은 드나들기 편하게 낮으막하게 설계되었고 전망문은 누웠을 때 바깥에서 보이지 않고 찬 바람이 머리나 발에 직접 닿지 않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대문 옆에는 200년 이상 된 배롱나무가 철 맞춰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겨울에 문중의 종손이 왔을 때 대문을 가리고 있는 줄기는 자르자고 하여 허락을 받아 자르고 보니 출입하는데는 시원하나 나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병암정기에 따르면 정자 옆에는 우물이 있었고 석불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으며 연못이 하나 있어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봉천사 마당바위인 봉천대에는 金上舍別庄 이라는 각자가 있다.

김현규(1765~1842) 옹이 지은 병암정기를 보면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아홉 겹으로 둘러쳐 세상과 격리되니 자연이 만든 병풍인 셈이다. 그윽하게 성곽을 이루고 높으면서도 노출이 되지 않으며 우뚝 선 봉우리들은 좌우로 두 손을 마주잡고 인사하는 듯하며 구비 구비 피어오르는 연하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어 스스로 일국을 이루고 있다... 이 정자에서 공부하는 나의 후손들은 몸을 바르게 하여 행실을 삼가는 것을 근본으로 할 것이며 강학하여 도리 밝힘을 가계로 삼아 서로 선을 베풀고 길러서 몸을 튼튼히 한다면 이에 족할 것이다... 이 정자가 편히 즐기고 노는 장소가 되지 않게 한다면 천년의 봉혈은 대대로 봉황의 새끼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면서 병암정의 지세를 자세히 나열하고 후학들이 가져야 할 몸가짐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기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내용들이다.

병암정은 운치면에서 다른 어떤 정자보다도 훌륭하다고 느낀다. 탁 터인 전경과 병풍바위 그리고 너럭바위 소나무 대숲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이제까지는 숲에 가리고 인적이 드물어 관리가 허술하여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문경의 명소로 발돋음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번 시청 문화관광과 엄원식 학예사 에게 건의하기를 병암이라는 말은 병풍바위라는 뜻인데 담장을 중간에서 끊지 말고 바위 끝까지 이어달라고 했다.

기록상 병암정을 지은 분은 병암(屛巖) 김현규 옹이다. 세거지는 산 너머 동네인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이다. 350여년 전에 입향조인 김해 선생께서 서중리에 터를 잡은 후 오늘날까지 대대로 살아오면서 지금도 종택이 전해온다. 김현규 옹은 김해 선생의 7대손으로서 평소 조상들로부터 들어오던 김해 선생께서 글을 보고 정심수양을 하시던 터에다가 병암정을 지었다고 한다. 봉천대에서 호연지기를 가꾸고 병암에서 책을 보셨다는 김해 선생의 가풍을 이어받아 자손대대로 학문과 수양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취지의 병암정기를 남기셨다.

1798..정조 22년생원(生員)
정조(正祖) 22년(179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15위(45/100)

안동김씨대종중
참봉공(시좌)파
현규(顯奎)
자(字)태응(台應)
호(號)병암(屛巖)
생(生)1765년 을유(乙酉) 11월 11일
관직(官職)무오(戊午)생원(生員)
저서(著書)유고(遺稿)가있다
졸(卒)1842년 임인(壬寅) 6월 4일
묘(墓)사촌선조(沙村先兆) 서쪽 기슭
임좌(壬坐)
배(配)전주류씨(全州柳氏)
생(生)1765년 을유(乙酉) 월 일
졸(卒)1815년 을해(乙亥) 6월 17일
묘(墓)사촌(沙村) 선비조(先妣兆) 아래
 갈명(碣銘)은 서파(西坡) 류필영(柳必永)이 지었다
임좌(壬坐)
 부(父)부사(府使) 범휴(範休)
 조(祖)참봉(叅奉) 도원(道源)
 증조(曾祖)증(贈)참판(叅判) 승현(升鉉)
 외조(外祖)김강한(金江漢) 본(本) 의성(義城)
19 세20 세21 세22 세23 세
택인(宅仁)상륜(尙倫)우량(佑良)현규(顯奎)용건(龍鍵)
봉건(鳳鍵)
원건(元鍵)
김진락(金鎭洛)
홍원표(洪元標)
김응화(金應華)
정창로(鄭昌魯)
김종휴(金宗烋)
김도장(金道章)
이심유(李深裕)
우직(佑直)현탁(顯鐸)두건(斗鍵)
영건(永鍵)
수건(壽鍵)
익근(益根)
진근(晋根)
이휘윤(李彙潤)
현용(顯鏞)
최주덕(崔柱悳)
조치상(趙致相)
박대규(朴岱圭)
채규우(蔡圭禹)
김현수(金玄壽)
우동(佑東)현용(顯鏞)언근(彦根)
김흥수(金興壽)
강익형(姜益馨)
권성교(權聖敎)
조규환(趙奎煥)
류호문(柳灝文)
조온연(趙溫然)
이요희(李堯羲)
권박(權樸)
손복현(孫復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