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익현(翊顯) |
김익현(金翊顯)은 김정동(金井東)과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1869년 경상북도 안동(安東)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과 23일의 안동읍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기독교도(基督敎徒)와 천도교도(天道敎徒)가 연합함으로써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는 3월 18일 오후 6시경 1백여명의 시위군중과 독립만세시위를 하고 이튿날 오전 1시에는 3천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과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몰려가서 애국지사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투석전을 벌이다가 일제의 발포로 부득이 해산하였다. 그리고 다음 안동 장날인 23일에는 더욱 격렬한 제2차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그도 이날 오후 8시경 3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읍내 중심지를 향하여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공포를 발사하며 저지하려 하였으나 시위군중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경찰서·지방법원 안동지청을 포위하고 투석으로 대항하였다. 그러자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제의 무차별 발포로 말미암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그도 체포되어 결국 이해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