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國會議員)  중한(重漢) |
김중한(金重漢)은 김효진(金孝鎭)과 진주강씨(晋州姜氏) 사이에서 1909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자(字)는 춘파(春坡)이며 호(號)는 해강(海崗)이다. 안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반 고학으로 규슈치과의학전문학교(현 규슈치과대학)을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고 고향 영덕으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후기에 영덕군 어업조합장 영덕군 금융조합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후 국민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인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한국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지방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 포항주류조합 이사장 영덕군농민회 회장 경상북도 농민회 부회장 경북한지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중앙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의사 출신의 문태준에 밀려 탈락하였다. 공천 탈락에 불만을 품고 타 후보를 지원하다가 3개월 정권 처분을 받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에 해당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역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문태준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경상북도 울진군-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려다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구속되었다. |
1963.11.26 | 국회의원(國會議員) 6대 |
호장공(처상)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