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사회부장관(保建社會部長官)  모임(慕妊) |
김모임은 부(父) 도현(道顯)과 모(母) 남궁(南宮)씨 사이에서 2남 1녀중 딸로 태어났다. 1959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을 학사 학위하였고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보건학 석사 1973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간호학을 전문직 학문분과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간호 분야의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전국 간호학 교수의 훈련을 주도했으며 질병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간호교육을 혁신시켰고 RN-BSN(간호학과 편입)제도를 도입하여 간호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을 실천했다. 한국 최초로 보건대학원에 국제보건학과와 의료법‧윤리 협력과정을 신설해 전문가 양성과 함께 생명윤리를 위한 철학‧법학‧의학의 융합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보건통계학의 온라인 과정과 ‘보건행정정책 고위자 과정’을 신설하여 현장 인력과 정책가들에게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간호학 및 보건학에 포괄적 건강이라는 혁신적 개념을 도입하고 지역사회 간호학 및 근거중심의 지역사회 보건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이러한 성과를 담은 7편의 학술저서와 100여 편이 넘는 연구논문과 정책 보고서는 한국 간호학 및 보건학의 학문적 발전과 정책 추진의 밑거름이 되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이 된 뒤 보건복지와 여성정책에 관한 많은 입법과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으며 제 36대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한국보건복지의 비전과 방향을 설정하는 정책가로 활약했다.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했으며 소외된 농어촌주민을 위한 보건진료원제도 가정간호사업 건강증진사업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장관 재임시에는 기초생활보호 제도를 마련하고 의료보험을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사회복지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이끌었다. 이외에도 의약분업의 시행과 전국민 연금제도의 확대 시행으로 현행 연금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보건정책의 향상과 함께 여성의 정치참여 및 정치인력 자원 양성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여성 지도자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단체협의회 제1회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을 비롯해 제15회 여성지도자부문 춘강상 삼성공익재단의 제5회 비추미 여성대상 등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UN 세계여성대회의 한국대표로 활약했으며 WHO(세계보건기구) IPPF(국제가족계획 협의회) ICN(국제간호협의회) 등 국제단체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 1991년에는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 ‘Heroes of Public Health’에 선정된데 이어 1996년에는 ‘Johns Hopkins Society of Scholar’에도 선정되었다. 학문적 업적과 리더십을 기리기 위해 연세대 간호학연구소는 ‘김모임간호학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해 운영 중이며 ICN에서는 ‘Kim Mo-Im Nursing Innovation and Policy Impact Award’를 창설하여 세계적인 지도자 발굴 및 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간호학계의 발전과 함께 살아온 그녀의 삶을 조명하는 연구가 텍사스여자대학교의 간호학 박사학위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세계 간호학의 주류인 미국에서 동양의 간호사를 연구주제로 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건의료 사회복지 여성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펼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회적 리더였다. 전 재산 26억 원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후학 양성을 위해 기부하고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며 인류 보건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월에 제11회 유일한상을 수상하였다.[1][2][3][4] 세계 보건 기구(WHO) 간호정책 고문 국제간호협의회장 등을 지냈다 |
1981.04.11 | 국회의원(國會議員) 11대 전국구 | |
1998.05.01 | 보건사회부장관(保健社會部長官) 36대 |
시중공(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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