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의한(義漢) |
![]() ![]()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전(普城高專)에서 학업을 하던중 암룰한 조국의 현실에 울분을 느끼고 낙향하여 풍산읍소산리에서 친동생 김지한(金智漢)과 함께 풍서농민회(豊西農民會)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풍서농민회는 회원이 약 180명이었는데 김지한(金智漢)·김기진(金箕鎭)·김무현(金武顯)·조제원(趙濟源)·김의한(金義漢)·김수한(金壽漢)·송창헌(宋彰憲)·김도현(金道顯)·김환규(金煥圭)·김성도(金聖道)·배병인(裵秉仁)·이종수(李鍾壽) 등 12명이 간부진이었다. 풍서농민회는 목적으로 회원의 상호부조와 생활향상을 표방하면서 무산자계급해방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또 당면과제는 소작료와 지세문제 해결 악독한 지주에게 대항하고 간악한 소작인을 처치하여 농민의 실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1926년 소작인의 소작료 문제로 지주와 대립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는데 이 투쟁을 일경은 폭력행위로 변질시켜 징역8월을 선고했다. 농민회는 농민을 부강하게 하고 올바른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일제로 부터의 독립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였던바 풍서농민회 간부들의 독립의식은 대단하였다. |
승의랑공(기보.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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