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吏曹判書)  대근(大根)


자는 일원(一原) 초호는 초계(苕谿) 뒤에 여연(如淵)으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공조판서 겸 판의금부사(工曹判書兼判義禁府事) 김한순(金漢淳)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신각(申慤)의 딸이다.

1827년 왕세자청정경과정시(王世子聽政慶科庭試)에 급제 그 해에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에 임명되었고 병조정랑과 실록기주관(實錄記注官)을 거쳐 1836년(헌종 2) 병조참의에 승진하였으며 강원감사와 대사간을 역임한 뒤 1852년(철종 2)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그 뒤 성균관대사성 강원도관찰사 사간원대사간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공조판서 한성부판윤·경기감사·예조판서 병조판서등을 역임하였고 1863년 형조판서 1870년 이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우찬성을 역임하였다.

한편 사화(詞華)에도 능하여 영물 등의 시 280여수를 남겼으며 또한 경연관으로 있던 1853년에 임금 앞에서 『중용』을 강의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중용강의」가 그의 문집 속에 수록되어 있다.또한 1862년에 쓴 「삼정구폐책(三政救弊策)」에서 당시 전부(田賦)·군적(軍籍)·환곡(還穀) 등의 폐단을 논하고 그 시정책으로 전부에 있어서는 곡식과 돈을 혼합징수하지 말고 지역에 따라 한 가지로 통일시킬 것과 군적에 있어서는 일 없이 한가로이 지내는 장정들의 병역기피를 방지하고 병역면제를 핑계로 돈을 함부로 징수하지 말 것과 환곡에 있어서는 과거의 사창제도(社倉制度)를 부활시킬 것 등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여연유고(如淵遺稿)』 3책이 있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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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상용)파
대근(大根)
자(字)일원(一源)
생(生)1805년 을축(乙丑) 5월 10일
관직(官職)정해(丁亥)문과(文科)
제학(提學)
기사(耆社)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우찬성(右贊成)
이조(吏曹)판서(判書)
저서(著書)여연유고(如淵遺稿)
졸(卒)1879년 기묘(己卯) 11월 5일
배(配)정경부인(貞敬夫人)해평윤씨(海平尹氏)
생(生)1806년 병인(丙寅) 월 일
졸(卒)1827년 정해(丁亥) 5월 15일
 부(父)군수(郡守) 경열(慶烈)
 조(祖)참판(叅判) 문동(文東)
 증조(曾祖)교리(敎理) 득경(得敬)
 외조(外祖)판서(判書) 조진관(趙鎭寬) 본(本) 풍양(豐壤)
배(配)정경부인(貞敬夫人)연일정씨(延日鄭氏)
생(生)1810년 경오(庚午) 월 일
졸(卒)1886년 병술(丙戌) 11월 10일
묘(墓)판관부군조(判官府君兆) 왼쪽 기슭
자좌(子坐) 삼합폄(三合窆)
 부(父)감역(監役) 화(和)
 조(祖)재각(在覺)
 증조(曾祖)성환(星煥)
 외조(外祖)이신명(李藎明) 본(本) 연안(延安)
20 세21 세22 세23 세24 세
헌행(憲行)이양(履陽)한순(漢淳)대근(大根)병익(炳翊)
현근(贒根)병삼(炳三)
병수(炳洙)
병하(炳河)
병용(炳龍)
이임재(李臨在)
해순(海淳)순근(順根)병묵(炳默)
의근(宜根)병희(炳喜)
병헌(炳憲)
병언(炳彦)
이건영(李建永)
이주영(李周永)
이조식(李祖植)
서윤보(徐崙輔)
이정재(李政在)
홍상전(洪相傳)
이만영(李晩永)
홍병건(洪秉健)
이규열(李奎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