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과 이의선(李義先)의 딸 한성부부인(漢城府夫人) 한산이씨(韓山李氏) 사이에서 둘째딸로 1828년에 관광방(觀光坊) 안국동에 있는 외가에서 출생하였다.

태어나던 날 상서로운 기운 한 줄기가 동쪽으로부터 곧게 뻗어와 산실(産室)에 걸쳤는데 그 광명이 찬란하였고 아래로 뻗친 것이 부엌의 첫 국밥을 끓이는 솥에까지 이르러 또한 형연(熒然)히 빛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1837년(헌종 3) 10세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4년 뒤 가례(嘉禮)를 올리고 왕후가 되었으나 왕후가 된지 2년 후인 1843년 (현종8) 16세의 나이로 소생없이 요절하였다.

당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력다툼 속에서 가장 큰 권력은 순조의 후비 순원왕후(안동 김씨)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안동 김씨의 여식 중 왕후로 간택된 것이 효현왕후였다.

1851년(철종 2) 경혜(敬惠)와 정순(靖順)의 휘호가 내리고 후에 단성(端聖)과 수원(粹元)의 존호(尊號)가 더해졌다. 또한 순종 때는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에 추존되었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용두동에 소재하는 경릉(景陵)으로 헌종과 계비인 효정황후와 나란히 묻혀있는 삼련릉(三連陵)의 형식을 하고 있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문정공(상헌)파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생(生)1828년 무자(戊子) 4월 27일
졸(卒)1843년 계묘(癸卯) 10월 18일
묘(墓)구리시 인창동 경릉
부(夫)전주(全州)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21 세22 세23 세24 세25 세
이소(履素)지순(芝淳)조근(祖根)병집(炳潗)갑규(甲圭)
남병철(南秉哲)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보근(輔根)
충근(忠根)병상(炳商)학규(學圭)
덕규(悳圭)
이병은(李秉殷)
민덕호(閔德鎬)
이희우(李喜愚)
원순(原淳)정근(貞根)병하(炳夏)학규(學圭)
박제훈(朴齊薰)
병상(炳商)
이최인(李㝡仁)
김영제(金永濟)
민경호(閔景鎬)
기순(箕淳)무근(茂根)병현(炳顯)남규(南圭)
박건수(朴建壽)
해근(荄根)
우근(芋根)
이민초(李敏初)
심의순(沈宜淳)
이범우(李範禹)
홍서(洪垿)
심능인(沈能寅)
이희명(李羲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