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성(大司成)  석규(錫圭) |
이조참판 김원근(金元根)의 손자이며 김병수(金炳洙)의 아들로 김병지(金炳地)에게 입양되었다.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사손(祀孫)으로서 고종의 특명에 의하여 1885년(고종 212) 교관(敎官)이 되고 그해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9년 규장각대교에 임용되었다. 그 뒤 시강원겸문학·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되고 1893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건양·광무연간에 수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봉상사제조·궁내부특진관 등 왕실과 밀접한 관직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1899년에는 부임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같은해 충청북도관찰사(忠淸北道觀察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법부 법무국장·협판을 비롯하여 법률기초위원회 위원장 평리원 판사 한성재판소 수반판사 형법교정관을 지냈다. 1904년에는 법부협판으로서 장호익(張浩翼) 등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유길준(兪吉濬)·이완용(李完用)과 같은 친일파를 내세워 역모한 사건에 강력히 대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1903년 영조 때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를 보수할 것을 건의하였고 그 증보작업의 당상(堂上)이 되었다. |
1885.. | 고종 22년 | 문과(文科) 고종(高宗) 22년(1885) 을유(乙酉) 대증광시(大增廣試) 병과(丙科) 27위(37/46) |
1885.03.22 | 고종 22년 | 동몽교관(童蒙敎官) |
1885.09.19 | 고종 22년 | 가주서(假注書) |
1889.03.09 | 고종 26년 | 대교(待敎) |
1889.05.10 | 고종 26년 | 부수찬(副修撰) |
1889.06.22 | 고종 26년 | 중학교수(中學敎授) |
1889.09.07 | 고종 26년 | 헌납(獻納) |
1890.09.11 | 고종 27년 | 겸문학(兼文學) |
1890.10.03 | 고종 27년 | 응교(應敎) |
1890.10.10 | 고종 27년 | 사복시정(司僕寺正) |
1890.11.03 | 고종 27년 | 대사성(大司成) |
1890.11.11 | 고종 27년 | 호조참의(戶曹參議) |
1891.04.14 | 고종 28년 | 동부승지(同副承旨) |
1891.05.21 | 고종 28년 | 형조참의(刑曹參議) |
1891.08.09 | 고종 28년 | 호조참의(戶曹參議) |
1892.07.30 | 고종 29년 |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
1892.08.21 | 고종 29년 | 돈녕도정(敦寧都正) |
1892.12.18 | 고종 29년 | 우부승지(右副承旨) |
1893.05.01 | 고종 30년 | 이조참의(吏曹參議) |
1899.02.04 | 고종 36년 | 특명전권공사(特命全權公使) 일본(日本) |
1899.02.20 | 고종 36년 |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
1899.04.02 | 고종 36년 | 충청북도관찰사(忠淸北道觀察使) |
1902.01.29 | 고종 39년 | 법부법무국장(法部法務局長) |
문정공(상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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