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참판(吏曹叅判)  원근(元根)


자는 경미(景渼) 호는 취정(翠庭)이다. 김이중(金履中)의 손자이자 김조순의 아들이다.

1809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27년(순조 27) 정시(庭試) 문과로 입격(入格)하였다.
1815년 강서현령(江西縣令) 1816년 임실현감(任實縣監) 1818년 의성현령(義城縣令) 1820년 재령군수(載寧郡守) 1821년 황주목사(黃州牧使) 1823년 평양서윤(平壤府尹)등 지방관을 거친뒤 대과에 급제한 1827년 병조참의(兵曹參議)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1828년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1827년 이조참의(吏曹叅議) 1828년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이르렀고 1831년 가의대부(嘉義大夫)를 가자받고 호조참판(戶曹叅判)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1832년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오르고 사후 1867년 고종4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순조(純祖) 9년(1809) 기사(己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2등(二等) 1위
[문과] 순조(純祖) 9년(1809) 기사(己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2등(二等) 1위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1809..순조 9년진사(進士)순조(純祖) 9년(1809) 기사(己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2등(二等) 1위(6/100)

1812.05.03순조 12년부사용(副司勇)
1812.06.19순조 12년세마(洗馬)
1812.09.09순조 12년시직(侍直)
1813.03.02순조 13년직부회시(直赴會試)
1814.12.25순조 14년평시주부(平市主簿)
1815.05.09순조 15년강서현령(江西縣令)
1815.06.01순조 15년익찬(翊贊)
1816.02.19순조 16년임실현감(任實縣監)
1818.06.25순조 18년의성현령(義城縣令)
1820.01.13순조 20년재령군수(載寧郡守)
1821.12.28순조 21년황주목사(黃州牧使)
1823.02.14순조 23년평양서윤(平壤庶尹)
1826.03.13순조 26년사재첨정(司宰僉正)
1827..순조 27년문과(文科)순조(純祖) 27년(1827) 정해(丁亥) 정시(庭試) 병과(丙科) 18위(22/28)

1827.04.10순조 27년병조참의(兵曹參議)
1827.04.17순조 27년동부승지(同副承旨)
1827.06.17순조 27년보덕(輔德)
1827.09.20순조 27년호조참의(戶曹參議)
1828.01.13순조 28년형조참판(刑曹參判)
1828.02.16순조 28년도승지(都承旨)
1830.12.02순조 30년공조참판(工曹參判)
1831.10.18순조 31년호조참판(戶曹參判)
1831.11.01순조 31년대사헌(大司憲)
1832.01.16순조 32년이조참판(吏曹參判)
1832.12.27순조 32년졸기(卒記)전 참판 김원근(金元根)이 졸하였다. 하교하기를 "국구(國舅)의 상사(喪事)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재신(宰臣)이 지금 또 서거하였다. 비단 그 집안을 위해서만 슬퍼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후(仁厚)하고 충근(忠勤)함은 참으로 쉽게 얻기 어려우니 그래서 더욱 슬퍼하는 것이다. 작고한 참판 김원근의 집에 퇴맞은 관판(棺板) 한 벌을 실어 보내고 상수(喪需)도 해조(該曹)로 하여금 되도록 후히 실어 보내게 하라." 하였다.

1867.09.14고종 4년증(贈)이조판서(吏曹判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