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郡守)  이례(履禮) |
자는 화문(和文) 호는 수곡(修谷). 아버지는 김교행(金敎行)이다. 1777년(정조 1) 생원이 되고 1793년에는 향천(鄕薦)을 받아 동몽교관에 올랐다.그 뒤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고 1810년(순조 10) 사자(嗣子)를 시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조사(曹司)오위장(五衛將)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근엄하고 준수하며 아울러 인덕을 지녔다.군수로 고을을 다스릴 때는 언제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오직 유교적 교화만을 숭상하여 인정(仁政)을 베풀기에 노력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학문을 좋아하고 사치를 싫어하였으며 특히 유학에 심취하여『가례(家禮)』와 『근사록(近思錄)』을 옆에 두고 그 정신구현에 항상 노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