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참판(吏曹叅判)  응순(應淳)


자는 회원(會元). 김상용(金尙容)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영행(金令行)이고 아버지는 김이건(金履健)이며 어머니는 조태과(趙泰果)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56년에 지평(持平)이 되었으며 정언(正言)을 거쳐 1759년에 경기어사(京畿御史)가 되어 환곡(還穀)을 돈으로 거둬들인 광주부윤 원경(元景) 죄수를 사역시킨 통진현감 윤병연(尹秉淵) 치적이 나쁜 죽산부사 이석유(李碩儒)의 파직을 건의하였다.

1762년에는 영남·호남이 크게 가물어 호남지방에 파견되었다. 이듬해 응교(應敎)가 되었고 이어서 광주부윤·승지를 거쳐 176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부제학(副提學)·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769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도승지를 지냈다.

1770년에 사직(司直)으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이조참판·한성부좌윤을 거쳐 호조참판·한성부우윤을 역임하였고 뒤에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


1753..영조 29년문과(文科)영조(英祖) 29년(1753) 계유(癸酉) 정시(庭試) 병과(丙科) 1위(04/12)

1753.03.16영조 29년가주서(假注書)
1756.03.12영조 32년설서(說書)
1756.07.11영조 32년사서(司書)
1756.09.03영조 32년지평(持平)
1757.05.22영조 33년문학(文學)
1757.12.01영조 33년이조정랑(吏曹正郞)
1758.06.30영조 34년정언(正言)
1758.08.16영조 34년겸문학(兼文學)
1758.10.02영조 34년수찬(修撰)
1758.10.23영조 34년중학교수(中學敎授)
1759.06.23영조 35년부교리(副校理)
1759.09.25영조 35년교리(校理)
1759.11.29영조 35년수찬(修撰)
1760.08.03영조 36년헌납(獻納)
1760.11.12영조 36년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1761.12.23영조 37년집의(執義)
1762.03.05영조 38년사복시정(司僕寺正)
1762.05.17영조 38년응교(應敎)
1762.07.26영조 38년우부승지(右副承旨)
1762.08.19영조 38년예조참의(禮曹參議)
1762.09.28영조 38년형조참의(刑曹參議)
1763.05.28영조 39년광주부윤(廣州府尹)
1763.09.09영조 39년형조참의(刑曹參議)
1763.11.02영조 39년대사간(大司諫)
1764.02.06영조 40년성천부사(成川府使)
1765.05.02영조 41년병조참의(兵曹參議)
1765.09.10영조 41년예조참의(禮曹參議)
1765.12.03영조 41년경상감사(慶尙監司)
1767.07.04영조 43년대사간(大司諫)
1767.11.14영조 43년이조참의(吏曹叅議)
1767.12.20영조 43년형조참의(刑曹參議)
1768.04.04영조 44년대사성(大司成)
1768.11.07영조 44년예조참판(禮曹參判)
1768.11.30영조 44년도승지(都承旨)
1769.01.27영조 45년대사헌(大司憲)
1769.03.04영조 45년공조참판(工曹參判)
1769.06.19영조 45년동의금부사(同義禁府事)
1769.11.11영조 45년예조참판(禮曹參判)
1770.04.10영조 46년형조참판(刑曹參判)
1770.07.20영조 46년이조참판(吏曹叅判)
1770.09.26영조 46년부제학(副提學)
1770.11.26영조 46년예조참판(禮曹參判)
1771.03.10영조 47년호조참판(戶曹叅判)
1773.09.21영조 49년대사헌(大司憲)
1773.10.27영조 49년병조참판(兵曹參判)
1774..영조 50년문과(文科)영조(英祖) 50년(1774) 갑오(甲午) 등준시(登俊試) 병과(丙科) 4위(10/15)

1774.07.27영조 50년졸기(卒記)한성 우윤(漢城右尹) 김응순(金應淳)이 졸(卒)하니, 임금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겨 특별히 예조 판서로 추증하였다. 김응순은 자(字)가 회원(會元)인데, 강화에서 순절한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의 8대손이었다. 총명하고 민첩하여 일찍이 문과에 올라 경상 감사(慶尙監司)와 부제학(副提學)을 차례로 거쳐 앞길이 바야흐로 열리고, 임금이 매우 총애하였는데, 하루 저녁에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나이 겨우 47세인지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애석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