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이조참판(贈吏曹叅判)  시서(時叙) |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이숙(彛叔). 증조부는 김광위(金光煒)이고 조부는 참의(參議) 김수익(金壽翼)이며 부친은 인제현감(麟蹄縣監)을 지낸 김성대(金盛大)이다. 문중의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 형제에게서 수학했다. 1721년(경종 1) 신축증광사마시(辛丑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남인(南人)이 조정의 정권을 잡고 있어서 벼슬 생활을 포기하고 은거하였다. 사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묘는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석실에 있다. 아들인 김선행(金善行)은 1739년(영조 15) 기미알성문과(己未謁聖文科)에 병과(丙科) 7등으로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김면행(金勉行)은 1755년(영조 31) 을해정시문과(乙亥庭試文科)에 병과(丙科) 2등으로 급제하여 참판(參判)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