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進士)  시정(時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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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 | 경종 1년 | 진사(進士) 경종(景宗) 1년(1721) 신축(辛丑)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22위(27/100) |
1722.07.22 | 경종 2년 | 임인사화 국청(鞫廳)에서 김시정(金時鼎)을 가두었다. |
1722.09.17 | 경종 2년 | 임인사화 죄인(罪人) 김덕기(金德器)를 태천현(泰川縣)의 배소(配所)에 도로 보냈다. 김덕기는 장세상(張世相)의 양자(養子)이다. 김성절(金盛節)이 김시정(金時鼎)과 면질(面質)한 초사(招辭)에 이르기를, \"내가 매양 그대의 집에 가면, 김창도(金昌道)가 번번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대의 집과 장세상의 집이 멀지 않으므로, 스스로 상통(相通)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김덕기를 잡아와서 추문(推問)하면 김창도·우홍채(禹洪采)·김시태(金時泰)의 무리가 장세상과 교통(交通)한 일을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이로써 문목(問目)을 내었더니, 공사(供辭)하기를, \"비록 장세상의 양자라 하더라도 본시 뜻이 서로 맞지 않아서 각집에서 살았으므로, 장세상의 소위(所爲)에 원래 참여하여 아는 일이 없었으며, 평일(平日)에 왕래하는 사람 또한 서로 알지 못합니다.\" 하니, 국청(鞫廳)에서 의계(議啓)하기를, \"은휘하고 바른 대로 공초하지 않으니, 정상은 비록 가증스럽습니다. 그러나 원래 사죄(死罪)가 아니니, 우선 그대로 가두어 두고 결말(結末)을 기다리소서.\"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그를 다시 추문(推問)할 단서가 없다 하여 도로 배소(配所)에 보냈다. |
1764.06.30 | 영조 40년 |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
1775.01.15 | 영조 51년 | 숭정대부(崇政大夫) |
1775.01.15 | 영조 51년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