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縣監)  기보(箕報) |
증조부는 남대장령(南臺掌令)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영(金瑛)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를 지낸 김생락(金生洛) 처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찰방을 지낸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의 딸이다. 증조부 대부터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여 김기보도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이문량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안동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김기보는 외할아버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외삼촌 이중량(李仲樑) 이숙량(李叔樑)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 되었다. 황준량(黃俊良)과는 동서가 된다. 향시에 합격하여 언양현감 거창현감 회인현감을 지냈는데 회인현감으로 있던 1586년에 장문의 진폐소(陳弊疏)를 올려서 과중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으며 재임 중인 1588년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문집으로 『창균집(蒼筠集)』이 있다. 문집 중 「관동행록(關東行錄)」은 관동 유람을 떠나 스승 이황에게 보낸 기행시로 이황은 이 시를 보고서는 헛된 걸음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타고난 자질이 고명한데 헛되이 세월만 보내니 안타깝구나. 뒷날 실패한 뒤에 내 말이 생각날 것이다.”라고 훈계하였다고 한다. 김기보의 사장(詞章)은 이황의 제자들 중에 특히 뛰어났다고 평가받았으나 병란으로 소실되어 시문 약 40여 편만이 전한다. 김성일의 학봉집(鶴峯集)에 실려있는 만사(挽詞) 出宰湖西縣。琴淸政自平。民方歌五袴。身已困三彭。栗里歸帆晩。桐鄕大夢驚。靑山送丹旐。白日掩佳城。 김원행(金元行)이 쓴 묘표 吾宗人金君養根。一日以其九世祖狀文過余曰。 吾祖歿百有七十餘年而墓無表。非敢慢也。 以世遠而事微也。冀有以得其詳焉。 竟莫能得則又懼愈遠而益微也。謹以一二可稽者爲請。 子以爲賢於己則願有述焉。按公諱箕報。字文卿。 自號蒼筠。安東人。高麗太師諱宣平之後也。 曾祖掌令諱永銖。祖承旨諱瑛。考諱生洛。妣朴氏。 縣令諱成稠女也。公爲人骯髒高爽。善談論。長於詞翰。 自少遊退溪,聽松之門。所與交盡一世賢者。 如李峒隱,趙重峰尤相得驩甚也。晩筮仕。 屢遷爲彥陽,懷仁縣監。懷仁時上章言民弊。治有惠聲。 以萬曆戊子卒于官。享年五十八。 葬于安東驛洞酉坐原。配李氏祔焉。 是爲知中樞府事聾巖公諱賢輔孫女。察訪諱文樑其考也。 有三子。長克。次兌隱德不仕。季元。 三女皆適士人。自孫曾以往。至今蕃衍幾累百人。噫。 觀公師友之盛。其磨礱上下。以自成就。 言行之可爲稱述者豈少哉。今其跡泯焉乃爾。良可悲夫。 而獨諸名公誄文尙在。有以仙鶴精神言之矣。 有以壺月襟懷言之矣。有以邦國瑚璉言之矣。嗚呼。 此猶可以想公之髣髴否乎。姑以此書之。使刻諸墓石。 |
김기보묘(金箕報)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역골 | |||||||||||||||||||||||||||||||||||||||
창균집(蒼筠集)『창균집(蒼筠集)』이 언제 편찬되어 발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류심춘(柳尋春 1763~1834)의 서문과 이태순(李泰淳 1759~1840)의 발문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
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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