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영전(永銓)


김영전(金永銓)은 김계권(金係權)과 예천권씨(醴泉權氏) 사이에서 1439년 차남으로 태어났다.
음보로 관직에 나가 비안(比安) 지례(知禮) 용궁(龍宮) 합천(陜川) 현감(縣監)을 지냈고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지내셨으며 성종2년에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의 녹권(錄卷)을 하사(下賜) 받았다.

배위(配位)는 숙인(淑人) 탐진안씨(耽津安氏)로 교도(敎導) 안겸(安謙)의 딸이다.

부군(府君)은 1522년 졸(卒)하였으며 묘소는 역동(嶧洞) 역동재 뒷산에 있다.좌향은 자(子)좌이며 묘갈(墓碣銘)은 후손 통덕랑  윤동(潤東)이 지었다.
배위의 묘소는 부군조(府君兆) 뒤에 있다.

*왕조실록의 기록
1.성종실록 59권 성종 6년 9월 29일 을해 5번째기사 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선전관 김영전을 뿔피리를 잘못 분 죄로 직첩을 거두고 외방에 부처하다.
"《대전(大典)》에 의하여 시행(施行)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대전(大典)》에 일컫기에는 행재(行在) 때 이외의 보통 때에 군령(軍令)을 범한 사죄 자(死罪者)
는 제 장(諸將)은 장(杖) 60대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행재(行在) 때이다. 마땅히 어떤 형(刑)으로 할
것인가를 다시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원상(院相)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잘못 아뢰었으니 마땅히 금부(禁府)에서 아뢴 대로 따르소서."
하니 명하여 단지 직첩(職牒)만 거두고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게 하였다.

2.성종실록 63권 성종 7년 1월 17일 임술 7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정역된 김영전등을 놓아주게 하다
부처(付處)된 허삼(許蔘)·권추금이(權甃今伊)·신자치(愼自治)·김영전
(金永銓)·효복(孝福)·고선경(高善慶)·    조칭(趙
秤)·이팽(李彭)과 정속(定屬)된 말동(末同)·막동(莫同)·장생(張
生)·박예(朴禮)·박자수(朴自守)·이수    진(李守
眞)·권현오(權賢吾)·마지귀(麻智貴)·존승비(存升非)와 전가 입거(全家
入居)된 박종직(朴從直)과 이치(移置)된 이효지(李孝智)·조진(曺疹)을 놓아주도록 하였다.

3.성종실록 68권 성종 7년 6월 18일 기축 3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병조에 전지하여 김영전 등의 고신을 돌려주게 하다.
김영전(金永銓)·용영손(龍永孫)·이계명(李繼命) 등의 고신(告身)을 돌려 주게 하
였다.

4.성종실록 189권 성종 17년 3월 6일 신해 2번째기사 1486년 명 성화(成化) 22년
이조에 임사홍 김영전등 112명의 직첩을 돌려 주라고 전지하다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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