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방(察訪)  창언(昌彦) |
자는 자미(子美)이다. 조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부친은 학관(學官) 김수칭(金壽稱)이다. 관직은 찰방(察訪)에 올랐다. 1722년(경종 2)에 역모에 연루되어 하옥되었다. 죄목은 종제(從弟)였던 김창집(金昌集)과 흉모를 꾸며서 김창도(金昌道)‧우홍채(禹洪采) 등으로 하여금 역모에 참여하도록 종용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을 받았다. 김민택(金民澤)‧이덕준(李德駿)‧이상건(李尙建)‧이홍술(李弘述)‧전인좌(錢仁佐)‧조송(趙松)‧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 등과 함께 옥사를 치르다가 곤장을 맞아 47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한 이후 신임사화 때 연루된 자들의 무고함이 드러나서 1726년(영조 2)에 이명좌(李明佐)‧조송‧형의빈(邢儀賓) 등과 함께 관직이 회복되었다. [율과] 영조(英祖) 39년(1763) 계미(癸未) 증광시(增廣試) 3등(三等) 6위(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