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文人)  우겸(祐謙) |
고조는 좌의정(左議政)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이고 증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증영의정(贈領議政) 김광찬(金光燦)이며 조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다. 부친 김창업(金昌業)과 모친 익풍군(益豊君) 이속(李涑)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고 둘째 부인은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여 병치레가 잦아 약과 침을 달고 살았으며 예닐곱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빼어난 용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며 모든 언행을 조심하고 삼갔다. 또 영민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족보 지파의 본원을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까지 꿰뚫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병중에 정신을 잃으면서도 책을 읽었다. 또 자신이 두고두고 읽을 경서와 역사서는 손수 베껴 두고 읽었으며 하루에 공부할 양을 정해 놓고 반드시 공부를 해야 잠이 들었다. 묘는 부친 김창업의 석교장사(石郊莊舍) 동쪽에서 10리 되는 곳에 있다. 삼연집에 실려있는 조카 우겸의 묘지명 吾弟大有之長子祐謙生於丙辰十一月十九日。歿於己丑四月二十六日。得年三十四。以實計之。其幽憂沉痼者。居十七年。其前以家禍狼狽。仍之失恃哭泣。又四五年。幼則脆弱善病。備甞藥石。至髫齔。乃免於父母提抱。甚矣。其生之艱而其死之困也。方其在舞象也。丰姿韶茂濯濯。如春月柳。慈和愛人。色笑可喜。其侍長者。則小心逡廵。恐或有愆也。穎敏有記性。明於譜牒。其尋別枝派。原原本本。由近而遠。靡不穿貫。遂有油然之意。施諸睦婣者爲多。嗜看書。旣病而癖甚。雖常昏眩厥逆。而枕邊必留一編。手錄經史之可讀者。揣摩功課。庶有一日之健。大肆其力於文章。寤寐啽囈。皆是事也。苦未遇人。與之講討。以爲悁鬱。余時往視。輒推枕促膝。欲於晷刻。上下千古。而出示排悶諸詩。大抵摸窮物態。多造精深。蓋其病中用心者專。而不以呻吟廢日。其苦切如此。才固可惜而志尤可憐也。噫。爲父兄者。縱莫能起癃作健。使究其志業。獨不可鎭日相守以暢其病懷乎。奄其歿矣。嗚呼其可恨也已。祐謙之歿。在大有石郊莊舍。仍葬于其東十里地亥向之原。卽其年七月四日也。我金系于安東。以高麗太師諱宣平爲鼻祖。曾祖考諱尙憲。官左議政。諡文正公。祖考諱光燦。同知中樞府事。贈領a議政。先考諱壽恒。領議政。大有名。昌業爲先考第四子。娶宗室益豐君涑之女。是生祐謙。祐謙有再室。前配高靈申氏生二女。俱沒。繼妻昌寧曹氏生一男一女。男方五歲。頭角嶄然。祐謙甞自悼其窮。以歸贏指是兒。庶冀其成立乎。銘曰。 艱其生貞其疾。惟十七年蔀其室。枕書而瞑。孰知其才。納銘深泉。維以告哀。 삼연집에 실려있는 질부 고령신씨 묘지명 吾弟大有之長子祐謙婦孺人高靈申氏死於丙子九月。以其年十一月入地。距今已五年矣。其始亡。大有病阽危。死生不相知。而祐謙亦以幽憂疾。莫克主喪。余與孺人父潚聚首謀葬。求地于楊州栗北之先山。屢易師而後得一小丘卯向者。叶於人謀。遂以孺人葬其中。天寒壙凍。事多悽酸。返哭未幾。厥遺兒在禓者隨化。余又與申公以堲周往。瘞于其足。焚其遺衣服而歸。蓋踰年而祐謙蘇。大有起。視其墓則草宿矣。返室而又廓然矣。遂父子相向。撫其身世而痛可知已。祐謙之謂余。則吾以病故。生未甞洽夫琴瑟。死不克忠于含斂。百歲之後。無藉以相見。願從叔父乞一言惠以慰沉魄。余潸然以應曰。惟汝腹悲。猶我恫也。惟汝婦懿。亦我悉也。我雖頑然。其愛於文。尙待得詳而泚筆否。曰閨壼之述。語不在多。叔父甞有誄矣。稍衍焉已矣。余遂撮其始終而叙之曰。孺人生五歲。而喪其母李孺人焉。嫁纔周歲。則哭其姑李孺人焉。死以厄於産。而㝈生二女皆不育。夫其短於造而贏於艱。其死也宜悼。况其賢哉。孺人自在其家。恭爲女職。至於鑰匙米鹽秤水茶湯。爲厥祖父母手足。入吾門而多故。祭姑以愨。拊小姑叔以恩。吾母羅夫人自失李孺人。有莫養恫。孺人繼修滫瀡以追孝舅病積月。一身爲焦。而羅夫人來視安危。則迎以色笑。奉席而安之。羅夫人甞覺曉寒逼體。俄而燠。問知爲孺人所抱薪。感刻至深。於其葬。臨穴摧叫。哀動役夫。可見其所以會者。孺人端壹有定操。平居無慢話無散視。俯首握務。日孜孜。遂以勤瘁殫身。此夫黨之所未忘也。孺人世系。其載於挹翠軒亡室狀者盛矣。厥後顯奕未艾。大父諱翼相。官右議政。母李孺人。左議政諱端夏之女。大有名昌業。安東金氏。考領議政諱壽恒。母卽羅夫人。世安定。李孺人。宗室益豐君諱涑之女也。孺人之葬。距李孺人墓。不百步而近。銘曰。 以爲其短。慽日則長。以爲其淑。天施如殃。依姑栗原。雙孩與將。其尙曰安。允固爾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