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영의정(贈領議政)  김성행(金省行) |
자는 사삼(士三)이고 호는 취백헌(翠柏軒)이다. 고조는 김상헌(金尙憲)이고 증조부는 김수항(金壽恒)이며 조부는 영의정(領議政)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이다. 부친 증좌찬성(贈左贊成) 김제겸(金濟謙)과 모친 송병문(宋炳文)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2년(경종 2)에 목호룡(睦虎龍)이 상소를 올려서 병기와 독약으로써 임금을 시해하려는 역적 무리를 보고하였는데 김성행(金省行)도 김민택(金民澤)‧김용택(金龍澤)‧심상길(沈尙吉)‧오서종(吳瑞鍾)‧이기지(李器之)‧이희지(李喜之)‧장세상(張世相)‧정인중(鄭麟重)‧조흡(趙洽)‧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 등과 함께 그 무리 속에 포함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을 당하였다. 국문(鞠問) 도중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충의와 절개를 지켰다. 수차례의 곤장을 맞으면서도 『예기(禮記)』의 구절을 인용하며 군자(君子)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심문으로 27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신임사화 때 죽임을 당하였던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이조참판(吏曹參判)‧영상(領相)에 차례대로 가증(加贈)되었다. 또한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旌閭)를 하사받았고 시호 충정(忠正)도 하사받았다. 불천위 : 충정공(忠正公) 김성행(金省行)에게 부조(不祧)의 은전(恩典)017) 을 시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김 충정(金忠正)의 높은 충성과 높은 절의는 다만 나만이 세상에 드문 느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두 성조(聖朝)에서도 포가(褒嘉)의 전교(傳敎)를 내리셨으니,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불천위일자 : 185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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