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인(女流詩人)  운(雲)


김운(金雲)은 6창(六昌)중 한분인 김창협(金昌協)과 연안이씨(延安李氏) 사이에서 1남 5녀중 3녀로 1669년 에 태어났다.
김운은 김창협이 영평(永平)의 백운산(白雲山)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운(雲)’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총명하여 동생인 김숭겸(金崇謙)과 함께 공부하였으며 재능을 인정받아 남자와 거의 동등한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즉 그는 부친으로부터 체계적으로 한문 교육을 받아 시서를 논할 정도의 학문적 식견과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운은 오진주(吳晋周)에게 시집가서 1700년 아들 오원(吳瑗)을 낳았으나 아들의 초칠일에 유질(乳疾)로 세상을 떠났다.

김운은 학문적으로 뛰어났으나 여성이라는 한계로 다소 절망한것을 엿볼수 있는데 자신의 묘지명을 부친이 적어주어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여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으로써 김창협이 묘지명을 쓰게된다.

김운이 죽자 김창협이 어유봉에게 애사를 짓게하고 자신은 망녀오씨부묘지명(亡女吳氏婦墓誌銘)을 써서 딸의 죽읆을 슬퍼하였다.

首陽吳晉周明仲妻。安東金氏。農巖居士女也。以崇禎己未十二月十七日子時生。於是居士以皇考議政公在謫籍。退築隱求菴于永平白雲山中以居而女生焉。故名之曰雲。而配以女德者。所以志也。居士先已有二女。然視女貌甚端。神明內蘊。益愛之。其明年。居士從議政公還京師九年。而遭己巳之禍。復入永平山中。時女年十一矣。始同弟崇謙。受書十數板。文理輒通。能自讀朱子綱目無所礙。日閉戶手卷。兀然潛玩。幾不省寢飯。居士憐而奇之。故不禁曰是女性靜而拙。雖識書無害也。因略授論語尙書。亦不竟。然其識解明徹。雖徧讀六藝經傳者。不能絶也。居士旣窮居。崇謙尙幼。其所朝夕左右從容。論古今治亂聖賢言行。以爲閨門之樂者。惟女而已。居六年。國家更化。會吳氏亦來求親。居士遂以女之。楊州先墓下。以禮送之。而因居于三洲之上。時則崇謙已長。日駸駸進學。而他學子來請業者日衆。答問講說。衎衎然。每入而不見女在側。輒悵然不樂。其在則未嘗不歡如也。庚辰七月十七日。遽因乳疾。先居士死。居士哭之慟。葬之于廣州月谷里乙坐之原。八月十八日也。女生質特溫恭慈良。自幼嬉戲。於兄弟間亦鮮有忿色違言。於父母可知也。及嫁。事姑謹。友君子莊而不暱。獨不能便給修飾爲世俗婦女態。姻黨或不知其賢也。伯祖谷雲先生。叔父三淵子。每愛呼與語。待以女士。一家諸女。莫敢望。然羣居退遜。壹如無能者。唯斤斤服女事。歸吳氏七年。吳氏之人。未嘗見其一視書。雖明仲。亦然。其靜密如此。顧嘗私謂兄弟。使吾得爲男子。無他願。但願結屋深山。庋書百千卷。蕭然老其中足矣。及與明仲語。輒推此意而告之曰。誠能爲此。吾當饁耕餧蠶。以供子衣食。又每勸明仲及時力學。以經術文章自立曰。沒世而名不稱。君子所疾也。燕私之言。蓋止此而已。金氏出高麗太師宣平。左議政文正公諱尙憲。同知中樞府事諱光燦。領議政諱壽恒。卽居士三世。居士名昌協。配延安李氏。副提學端相女也。明仲皇考諱斗寅。刑曹判書贈領議政。忠貞公。祖諱䎘。慶尙道觀察使。所乳子曰應大。今六歲。始女死。居士卽有意銘其墓。旣而崇謙死。尋又仲女死。因以及於大故。悲哀痛酷。不復能爲文。居士昔嘗爲一家殤女作墓文。女時見之曰。是尙得翁文爲不朽其死。非不幸也。間又謂明仲。吾女子也。恨無功德見於世。無寧蚤死得吾父數行文。以鐫墓石。今女旣死矣。而吾不以時爲銘。卽一朝溘然。父子之目。俱不瞑於土中矣。遂忍痛泣書。以掩諸幽。嗚呼。是誠讖耶。其果得其幸願者耶。銘曰。
女子身。儒士識。生翳然。死更惜。命在天。莫與力。銘在我。尙不泐。
그때 딸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비로소 동생인 숭겸(崇謙)과 함께 책 열 몇 권을 받았는데 문리에 문득 통하여 능히 스스로 『주자강목(朱子綱目)』을 읽었는데 막히는 바가 없었다. 매일 방문을 닫고 손에는 책을 쥐고 오똑하게 앉아 깊이 음미하여 거의 침식을 돌보지 않았다. 거사(김창협 자신)가 사랑스럽고도 기이하게 여겨 금하지 않고 말하기를 “이 딸아이는 성품이 고요하고도 소박해서 비록 글을 알아도 해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논어(論語)』와 『상서(尙書)』를 대략 가르치니 또한 다 끝나지 않아서도 그러했다. 그 식견과 해석이 명철해서 비록 육예(六藝)의 경(經)과 전(傳)을 두루 읽은 사람이라도 능히 끊을 수가 없었다. 거사가 이미 곤궁하게 살았고 숭겸이 아직 어려 아침저녁으로 곁에 두고 조용히 고금의 치란(治亂)과 성현의 언행을 논하여 집안에서 즐거움으로 삼을 자가 오직 이 딸뿐이었다.

김운의 시는 전해지지 않으나 강화도를 지나면서 지은 과선원사 한구절만 전해진다.

過仙源祠(과선원사)
精忠染盡祠前樹(정충염진사전수) 충성을 다한 사당은 나무 앞에 있고
秋後霜楓葉葉丹(추후상풍엽엽단) 서리 내린 뒤 가을 단풍은 잎잎이 붉구나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