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현감(砥平縣監)  김인겸(金仁謙)


자는 사안(士安) 호는 퇴석(退石). 김상헌(金尙憲)의 현손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김창복(金昌復)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장서주(張瑞周)의 딸이다.

문벌이 혁혁(赫赫)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그의 할아버지인 수능(壽能)은 서출이라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감에 그쳤다. 14세 때에 아버지를 사별하고 가난에 시달려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다가 47세 때인 1753년(영조 29)에야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57세 때인 1763년에는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종사관인 김상익(金相翊)의 서기(書記)로 뽑혀 통신사 조엄(趙曮)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1764년 일본에 다녀온 기행사실을 가사형식으로 「일동장유가」를 지었다. 그뒤 지평현감(砥平縣監) 등의 벼슬을 지냈다. 저술로는 역시 일본기행을 한문으로 지은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영조(英祖) 29년(175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40위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 안동김씨대종중안동김씨대종중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조선 후기에 김인겸(金仁謙)이 지은 기행가사.

국문본.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4 200행이 넘는 장편기행가사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람본이 영인·보급되어 있고 따로 이가원(李家源)본이 있다.

이 작품은 1763년(영조 39) 8월 일본 통신사 조엄(趙曮) 부사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김상익(金相翊) 제술관(製述官) 남옥(南玉)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한 작자가 이듬해 7월 8일 복명할 때까지 11개월 동안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군관 17명 역관 12명 의원 3명을 비롯 100여명의 행원(行員)과 400명에 달하는 역원들을 합하여 일행 500명이 서울을 떠난 지 두달 만인 10월 6일 부산항에서 승선하여 대마도와 대판성(大阪城)을 거쳐 에도(江戶)에 도착한 것이 다음해 2월 16일이다.

이역만리의 긴 노정에 따라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 일본의 풍속 외교임무의 수행과정 등을 소상히 기록하였고 강직한 선비의 기개와 비판의식이 넘쳐 있을 뿐 아니라 기행문의 요체가 잘 갖추어져 있어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작자 김인겸은 1753년(영조 2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통신사의 서기로 발탁되기까지 향리 공주에 칩거한 강직 청렴한 선비로서 문장에 특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행로에서 받은 융숭한 대접과 풍물에 대한 이야기며 수천수에 달하는 시를 지어 왜인에게 준 문인외교의 편모를 알 수 있다.

특히 “당당한 천승국의 예물예단 가져와서 개돝 같은 취류에 사배(四拜)하기 어떠할꼬.”라는 구절에서는 개돝 같은 왜놈에게 예배하기 싫어 상사(上使)들의 강권도 듣지 않고 국서 봉정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작자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다. 왜녀의 음란한 풍속과 일본의 경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작자의 강직 청렴한 정신과 여유와 해학이 넘치는 성격이 반영되어 있으면서 지명·인명·일시·거리와 역사적인 사실에 객관성을 잃지 않은 고전기행문의 대표작이다. 국내의 노정은 주로 삽화와 지방의 특색을 서술하고 감상을 주로 하고 있으나 일본에 대한 묘사는 객관적인 관찰과 주관적 비판으로 일관하면서도 주체적 정신에 입각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국문학자료로서는 물론 외교사절단의 규모와 일본의 풍속 및 외교의 방법 등 한일외교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가사체로 된 기행문이라는 특성 때문에 서정적 가사라기보다 기행수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도 있다.,

문정공(상헌)파
인겸(仁謙)
자(字)사안(士安)
호(號)퇴석(退石)
생(生)1707년 정해(丁亥) 월 일
관직(官職)계유(癸酉)진사(進士)
지평(持平)현감(縣監)
저서(著書)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동사록(東蹉錄) 동사수창록(東蹉酬唱錄)
 계미년(癸未年)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을 다녀왔다
졸(卒)1772년 임진(壬辰) 6월 18일
배(配)우봉이씨(牛峰李氏)
생(生)1705년 을유(乙酉) 월 일
졸(卒)1767년 정해(丁亥) 6월 26일
묘(墓)선조(先兆) 아래 간좌
합폄(合窆)
 부(父)사과(司果) 만응(晩膺)
16 세17 세18 세19 세20 세
광찬(光燦)수증(壽增)창국(昌國)치겸(致謙)문행(文行)
존행(存行)
이강중(李剛中)
윤경성(尹敬性)
이규현(李奎賢)
이연(李演)
최겸(最謙)상행(相行)
익겸(益謙)찬행(贊行)
이소(李熽)
심하진(沈夏鎭)
홍연호(洪練浩)
의겸(宜謙)낙행(樂行)
철행(哲行)
홍치원(洪致源)
이하조(李賀朝)
영빈(寧嬪)
창숙(昌肅)호겸(好謙)준행(峻行)
창직(昌直)일겸(逸謙)응행(應行)
치행(致行)
퇴겸(退謙)화행(和行)
송필휴(宋必休)
홍문도(洪文度)
이병천(李秉天)
신진화(申鎭華)
유명건(兪命健)
수흥(壽興)
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성행(省行)
준행(峻行)
원행(元行)
달행(達行)
탄행(坦行)
위행(偉行)
이봉상(李鳳祥)
민백종(閔百宗)
호겸(好謙)
민계수(閔啓洙)
민창수(閔昌洙)
창협(昌協)숭겸(崇謙)원행(元行)
서종유(徐宗愈)
이태진(李台鎭)
운(雲)
박사한(朴師漢)
유수기(兪受基)
창흡(昌翕)양겸(養謙)범행(範行)
간행(簡行)
화행(和行)
윤만동(尹萬東)
유언전(兪彦銓)
홍익대(洪益大)
황심(黃杺)
치겸(致謙)
후겸(厚謙)
윤세량(尹世亮)
이덕재(李德載)
창업(昌業)우겸(祐謙)유행(由行)
이현중(李顯重)
언겸(彦謙)제행(悌行)
임명주(任命周)
이도신(李度臣)
심관(沈鑵)
신겸(信謙)양행(亮行)
비겸(卑謙)열행(說行)
필행(弼行)
길행(吉行)
정복증(鄭復曾)
윤겸(允謙)지행(摯行)
용행(龍行)
장이원(張履元)
조문명(趙文命)
이관(李灌)
이협(李浹)
창즙(昌緝)용겸(用謙)적행(迪行)
이망지(李望之)
창립(昌立)후겸(厚謙)간행(簡行)
이언신(李彦臣)
이섭(李涉)
수징(壽徵)창석(昌碩)희겸(喜謙)정행(貞行)
이정영(李廷英)
윤교(尹敎)
세겸(世謙)지행(至行)
창엽(昌曄)
창발(昌發)
창술(昌述)부겸(富謙)윤행(允行)
귀겸(貴謙)청행(淸行)
우겸(愚謙)의행(義行)
정노언(鄭魯彦)
정(鄭)
한재중(韓在中)
이보택(李普澤)
창필(昌弼)택겸(宅謙)기행(箕行)
두행(斗行)
김보명(金輔明)
충겸(忠謙)운행(雲行)
홍겸(弘謙)박기하(朴耆河)
조명주(趙鳴周)
조명석(趙鳴奭)
창실(昌實)지겸(智謙)상행(象行)
천행(天行)
장행(章行)
헌행(獻行)
복행(復行)
이조한(李朝漢)
성겸(聖謙)을행(乙行)
이행(彛行)
구행(久行)
익행(翼行)
창길(昌吉)목겸(牧謙)일행(日行)
청행(淸行)
석겸(奭謙)계행(啓行)
김우붕(金宇朋)
김언호(金彦祜)
김지옥(金趾玉)
숙겸(肅謙)증행(曾行)
민행(閔行)
안행(顔行)
이영필(李永弼)
오명수(吳命脩)
직겸(稷謙)정행(正行)
평행(平行)
명행(明行)
학행(學行)
김서진(金瑞晋)
식겸(軾謙)경행(絅行)
소행(紹行)
오명길(吳命吉)
임도형(任道亨)
신광열(申光說)
정덕조(鄭德祚)
이기상(李麒祥)
임치도(任致道)
임이도(任履道)
임택(林澤)
이작(李綽)
수응(壽應)창엽(昌曄)도겸(道謙)백행(百行)
온행(蘊行)
덕겸(德謙)봉행(鳳行)
서명완(徐命完)
이진응(李進膺)
이취복(李就復)
휘겸(撝謙)
존겸(尊謙)
손집(孫鏶)
신혜동(辛惠東)
송상문(宋相文)
송병선(宋炳先)
이침(李綝)
윤사발(尹師發)
박성한(朴聖漢)
이창지(李昌祉)
박재신(朴再新)
수칭(壽稱)창진(昌震)종겸(宗謙)인행(仁行)
사행(士行)
취행(就行)
창언(昌彦)낙겸(樂謙)온행(蘊行)
손치택(孫致澤)
이흥규(李興奎)
신성구(申聖逑)
이장온(李長溫)
이동수(李東秀)
박상의(朴相誼)
임소(林蘇)
이욱(李煜)
이희정(李禧鼎)
수능(壽能)창복(昌復)인겸(仁謙)인행(麟行)
봉행(鳳行)
송묵연(宋默淵)
이규한(李奎漢)
유상익(柳相翼)
이제광(李濟廣)
이표(李杓)
이기한(李箕漢)
창시(昌始)의겸(義謙)용행(龍行)
서문영(徐文永)
권상요(權相堯)
신재화(申載華)
이정악(李挺岳)
홍주천(洪柱天)
이중휘(李重輝)
송규렴(宋奎濂)
이광직(李光稷)
허서(許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