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이조참판(贈吏曹叅判)  성우(盛遇) |
1630년(인조 8)∼1657년(효종 8). 조선 중기 효자. 자는 제이(際而)이다.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우의정(右議政)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이고 조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김광현(金光炫)이다. 부친 통정대부(通政大夫) 수원부사(水原府使) 김수인(金壽仁)과 모친 현감(縣監) 성홍헌(成弘憲)의 딸 창녕성씨(昌寧成氏)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김성운(金盛運)이 있다. 부인은 목사(牧使) 윤형성(尹衡聖)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타고난 자질이 명석한데다 독서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 따뜻한 성품으로 사람들을 언제나 자상하게 대하였다. 1652년(효종 3)에 증광시 진사 3등 19위로 합격하였다. 어려서 모친이 병들어 있던 2년 동안 게으름을 피우는 일 없이 정성껏 돌보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예법에 맞게 행하였다. 부친이 병이 났을 때는 넓적다리의 살을 잘라서 피를 내어 부친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소[牛]의 젖을 손수 취해다가 드리기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멈추지 않다가 병을 얻었다. 그런데도 부친에게는 아픈 티를 내지 않고 병환을 돌보다가 부친을 남겨둔 채 병이 깊어져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효로써 정려(旌閭)를 받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었다.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도사(都事) 김시걸(金時傑)과 김시보(金時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