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10.28 | 인조 15년 | 상소 고(故) 상신(相臣) 김상용(金尙容)의 아들 김광환(金光煥)·김광현(金光炫)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모두 죄짓고 죽지 않았던 질긴 목숨으로서 뜻밖에 그지없이 지극한 억울함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무릅쓰고 아룁니다. 듣자옵건대, 강도가 함몰될 때에 신의 아비가 적병이 대거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새벽에 대군(大君)을 따라 나루터에 갔는데, 적의 배가 건너오려는데도 막는 자가 없는 것을 보고 나라의 일이 이미 글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분사(分司)에 돌아오니 윤방(尹昉)·박동선(朴東善)·강석기(姜碩期)·이상길(李尙吉) 등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신의 아비가 말하기를, ‘적이 이제 강을 건너니 일이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늙고 병든 원임(原任)은 직접 맡은 일도 없는데, 산성의 안위도 알 수 없고 이 강도도 함몰되니, 나는 한 번 죽는 일이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이어서 각각 일어나 나가고 신의 아비는 드디어 남문(南門)에 가서 자결하였습니다. 변란을 겪은 뒤에 윤방·박동선·강석기가 조문하러 와서 다들 이 말을 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신의 아비가 절의를 지켜 죽음은 평소 작정했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신의 아비가 남초를 피다가 불을 내어 잘못 타 죽었다.’ 하나, 신의 아비는 평생에 남초를 싫어하여 입에 가까이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어찌 죽고 사는 것이 앞에 닥쳤을 때에 도리어 평생에 싫어하던 물건을 피웠겠습니까.
신의 아비가 입었던 옷을 벗어 하인에게 준 것은 대개 이미 자결할 뜻을 정하고 그것을 남겨 초혼(招魂)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드디어 문루에 이르니 적봉(賊鋒)이 이미 가까워졌으므로 화약 옆에 다가앉아 옆에 있는 사람을 물러가게 하였는데 혹 떠나기도 하고 떠나지 않기도 하였으며 하인들은 비보(秘報)가 있는가 하여 엿들으려고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의 아비가 종자(從者)를 불러 말하기를 ‘불을 가져오라.’ 하였으나 종자가 머뭇거리고 곧 바치지 않자, 속여 말하기를 ‘남초를 피려 하니 빨리 가져오너라.’ 하므로 종자가 드디어 불을 바쳤습니다. 이때 서손(庶孫) 수전(壽全)이 열세 살인데 또한 따라가서 옆에 있었습니다. 신의 아비가 종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라.’ 하였으나, 수전이 기색을 살펴 보고 문득 앞에 가서 껴안아 잡고 말하기를 ‘나도 대부(大夫)를 따라 죽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의 아비가 화약 가운데에 불을 던지니 세찬 불꽃이 갑자기 일어 문루와 함께 날아갔습니다. 죽은 실상은 대개 이러합니다. 말하는 자가 드디어 이 때문에 남초를 피우다가 불을 내어 잘못 죽게 되었다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때에 방편으로 남을 속이지 않고 곧바로 말하기를 ‘불을 가져오라. 내 스스로 불살라 죽으려 한다.’ 하였다면 누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였겠습니까.
신들이 강도에 들어가 죽은 아비의 유체를 거의 10일 동안 찾았는데, 성안 사람이 와서 그 일을 자못 상세히 말하였고, 혹 자기 친족이 남문에서 같이 죽은 자가 있어 울부짖으며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혼자 죽지 않고 남도 같이 죽게 하였는가.’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부(愚夫)·우부(愚婦)의 헐뜯고 칭찬하는 말이 다르지만 신의 아비가 자결한 사실은 자연 엄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울 사는 늙은이 염용운(廉龍雲)이라는 자는 강도로 피란하여 신의 아비가 자결할 때 문루 위에 있었습니다. 신의 아비가 낯빛을 돋우어 꾸짖어 물리치므로 드디어 원망스레 내려가 겨우 문로(門路)에 이르자 불이 났으므로 비로소 물리친 까닭을 알았다 합니다. 이것은 다 신의 아비가 자결한 사적(事蹟)을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입니다.
일전에 신들이 보건대, 사제(賜祭)의 제문으로 인하여 스스로 타 죽은 것은 분명하지 않다는 분부가 있었고 이어서 거짓이라는 등의 분부가 있었습니다. 일월 같은 밝은 지혜로도 이르지 못하는 바가 있겠지만, 신의 아비가 자결한 것을 분명하지 않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신의 아비는 지위가 정승에 이르렀고 나이가 여든에 가까웠으므로 나라를 위하여 한번 죽으면 소원은 끝납니다. 어찌 죽은 뒤의 명예를 위하겠습니까. 국가에서 칭찬하여 총애하더라도 신의 아비가 바라는 것이 아니며, 억제하여 버려두더라도 신하의 아비가 억울하게 여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아들로서 지극히 원통한 것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신에게 감히 바람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감히 임금에게 스스로 멀어질 수 없으므로 그 실상을 통촉하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경의 아버지 일은 같이 타 죽은 자가 매우 많으므로, 내가 이것을 의심하여 감히 가벼이 허락하지 못하였다. 경들의 말은 이제 이러하더라도 사체가 매우 중대하니, 해조를 시켜 사문(査問)하여 처치하겠다.\"
하고, 이어서 그 소를 예조에 내렸다. 예조가 아뢰기를,
\"김상용의 일은 강도 유수(江都留守) 윤이지(尹履之)가 불에 타서 죽었다고 하였고, 신들도 변란에 임하여 분사하여 절의가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정표할 종류로 정부에 신보하였습니다. 이제 하교가 이러하시니, 다시 강도에 공문을 보내어 명백히 살펴서 아뢰게 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때 강도에 있던 대신과 종실(宗室)에게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김상용의 일을 윤방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그날 적병이 대거 나룻가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신들이 모두 관문(館門) 밖에 모였는데, 김상용이 나루에서 와 적이 필시 강을 건널 것이라는 상황을 말하고, 또 신에게 말하기를 「공(公)은 이미 종묘·사직의 신주를 모셨으므로 나와 달라 나의 죽음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기(敵騎)가 이미 남쪽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서로 한 번 읍(揖)하고 흩어졌는데, 이윽고 화약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놀라 일어서서 남문을 보니 세찬 불이 하늘에 치솟았다. 늙은 하인을 시켜 탐문하였더니 김상(金相)이 화약으로 자분하였다 하였고, 군관을 시켜 다시 물었더니 그들이 들은 바도 그와 같았다. 신은 김상용이 작별할 때에 한 말을 이미 들었으므로 그가 자결한 것을 믿고 그 사이에 의심한 적이 없다.’ 하였고, 회은군(懷恩君) 이덕안(李德仁)과 진원군(珍原君) 이세완(李世完)은 말하기를 ‘그날 오시(午時)에 남문에서 불이 나 세찬 불꽃이 하늘에 치솟으면서 문루와 함께 날아 갔으므로 성안이 들끓고 황급히 달아났는데, 와서 전하는 자가 다 김 정승이 스스로 분사하였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강도에 들어갔던 대신과 종신들의 말하는 것이 이러하니, 김광환 등이 아비를 위하여 억울함을 하소연한 소는 거짓이 아닐 듯합니다. 전에 계청(啓請)한 대로 본부(本府)를 시켜 다시 더 살펴서 신보하게 하여 처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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